일러스트=이철원

일본 도쿄에서 치과 방문 진료를 따라가 본 적이 있다. 환자는 80대 할머니로 뇌졸중 후유증으로 거동이 불편해 집 밖을 나오기 힘들었다. 방문 진료팀은 30대 여성 치과 의사와 치위생사였다. 할머니가 “틀니가 입천장을 찌른다”고 하자, 틀니를 꺼내어 돌출된 부위를 즉석에서 그라인더로 윙~ 갈았다. 다듬어진 틀니로 할머니가 음식을 잘 씹는지 확인하는 작업을 반복했다. 일본에서 이런 방문 진료를 전체 치과 6만8000여 곳 중 22%가 한다. ▶도쿄 긴자 옆 동네 신바시에 자리 잡은 유쇼카이(悠翔会) 의료법인은 개설 클리닉 없이 방문 진료만 한다. 100여 명의 의사들이 매일 아침 도쿄 시내 곳곳으로 흩어진다. 돌보는 환자 집이 7600여 곳이다. 가 본 환자가 우울증이 심해졌으면, 다음 방문 진료에는 정신과 의사가 간다. 임종이 다가올 환자 집에는 방문 호스피스를 한다. 그런 환자가 집에서 세상을 뜨면, 자연사로 처리된다. ▶신주쿠에 자리 잡은 유미노 심장클리닉은 심부전으로 병원에 입원했다가 퇴원한 환자 집에 산소 포화도, 전자 체중 측정, 심전도 등을 설치하여 환자 상태를 모니터링한다. 병세가 나빠지면, 심장내과 전문의가 모바일 심장 초음파를 들고 가서 진료를 하고 처방전을 낸다. 그러자 심부전 환자 재입원율이 절반으로 줄었다. 집이 마지막 병원인 셈이다. 환자는 집에 있어서 좋고, 병원은 불필요한 입원 환자가 없어서 좋다. ▶도쿄 소방청의 최대 고민거리는 거동 불편 75세 이상 계층이 앰뷸런스를 너무 많이 타서 응급 환자 이송이 지연되고 있다는 점이다. 한 해 89만 건의 앰뷸런스 출동 중 25만 건을 75세 이상이 탄다. 그 수도 해마다 늘고 있다. 이들이 응급실에 와서는 간단한 처치나 투약을 받고 다시 집으로 돌아간다. 그래서 나온 해결책이 의사가 환자 집으로 가는 방식이다. ▶의사 선생님이 왕진 가방을 들고 환자 집을 찾아가는 풍광은 1960년대까지만 해도 흔했다. 의료가 고도화되고, 병원 기능이 커지면서 왕진은 자취를 감췄다. 집 나간 왕진이 초고령사회에서 귀환하고 있다. 병원에 못 오는 거동 불편 고령 환자가 너무 많아졌기 때문이다. 일본은 한 해 방문 진료가 1200만 건에 이른다. 우리는 아직 왕진 시범 사업과 뜻있는 의사들의 자원봉사에 머물러 있다. 통상 방문 진료는 인구 고령화 비율이 23~24% 되면서 활성화된다. 지금부터 제도적으로 바짝 준비하면, 조만간 왕진 꽃이 필 것이다.

/김철중 논설위원, 의학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