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 스님은 수필 ‘설해목(雪害木)’에서 폭설이 내릴 때 “깊은 밤, 이 골짝 저 골짝에서 나무들이 꺾이는 메아리가 울려 올 때 잠을 이룰 수가 없다”고 했다. 117년 만의 ‘11월 폭설’로 전국적으로 아파트 주차장 출입구 지붕 등이 무너져 인명 피해까지 속출했지만 나무들도 큰 피해를 당했다. 서울 헌법재판소 안에 있는 명물 재동 백송도 길이 3~8m에 이르는 가지 5곳이 찢어지거나 부러졌다. 총리 공관 안에 있는 천연기념물 ‘서울 삼청동 측백나무’도 길이 4∼8m에 달하는 가지 6곳이 부러지거나 꺾였다.

일러스트=박상훈

▶이렇게 피해가 큰 것은 이번 눈이 물기를 머금어 무거운 ‘습설(濕雪)’이기 때문이다. 눈이 만들어지는 구름층의 기상에 따라 다양한 눈이 만들어진다. 상공 1.5㎞ 기온이 영하 10~20도로 비교적 높을 경우 함박눈으로 내린다. 이 눈은 습설이라 잘 뭉쳐져 눈사람을 만들거나 눈싸움하기에 좋다. 그러나 건조한 눈에 비해 3배나 더 무거워 건물이나 나무에는 치명적일 수 있다. 상공 기온이 영하 20도 이하로 차가울 때는 싸락눈이, 여기에 바람까지 강할 경우엔 가루눈이 내린다. 북유럽에서 내리는 눈이 이런 가루눈이다. 이 눈은 미세한 눈 조각의 상태로 내려 잘 뭉쳐지지 않는다.

▶스키장에선 인공눈과 자연눈을 함께 쓴다. 인공눈은 물을 압축공기와 함께 뿜어내면서 얼리는 방식으로 만든다. 인공눈은 얼음 알갱이 밀도가 높다. 물 10㎜가 자연눈으로 내리면 10㎝ 쌓이는데 인공눈은 절반인 5㎝에 불과하다. 인공눈은 알갱이 사이의 틈이 적기 때문에 스키가 눈에 빠지지 않고 잘 미끄러진다. 그래서 속도감 있는 스키를 즐기는 데는 자연눈보다 인공눈이 더 좋다고 한다.

▶우리나라 골프장에서 늦가을 소나무 전지 작업을 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웃자란 가지, 늘어진 가지를 솎아내 수형을 다듬는 목적도 있지만 태풍이나 폭설에 가지가 부러지거나 쓰러지는 일을 막기 위한 것이다. 겨울에 일본 3대 정원 중 하나인 겐로쿠엔 공원 등에선 ‘유키즈리’라는 독특한 장치를 볼 수 있다. 눈 무게로 고목 가지가 부러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나뭇가지에 줄을 달아 우산대 모양으로 매어 둔 장치다. 우리나라도 도입해볼 만하다.

▶이번 폭설은 북쪽에서 내려온 찬 바람이 식지 않은 서해에서 수증기를 더 공급받아 만들어졌다. 기상청은 올겨울 조건이 맞으면 이번 같은 폭설이 다시 내릴 수 있다고 전망했다. 이제 겨울이 시작이다. 올겨울엔 눈 예보가 나오면 긴장을 늦추지 말아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