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도 모양의 구조역학적 완충작용을 하는 골심지에 두꺼운 종이를 접합해 만든 포장재’. ‘골판지’에 대한 공업 표준 용어집의 설명이다. 골판지는 1856년 영국에서 모자의 부속품 용도로 발명됐다. 모자 안쪽에 감아 통풍을 하면서 땀도 흡수하는 용도였다. 18년 뒤 미국의 한 발명가가 유리병 보호용으로 골심지 한쪽 면에 종이를 붙인 포장재를 만들었다. 현대 골판지의 탄생이었다.
▶우리나라에선 1963년까지 골판지가 ‘단보루’로 불렸다. 일제강점기에 골판지를 한국에 들여온 일본인들이 두꺼운 종이를 뜻하는 cardboard를 ‘보루’라고 쓰면서, 여러 층이 있는 골판지를 ‘단(段)보루’ 종이라고 부른 영향이다. 한국 골판지 업체들이 1963년 협회를 만들면서 우리말 ‘골’을 사용해 ‘골판지’라는 새 용어를 만들었다. 중국에선 골판지를 기왓장 모양 비슷하다고 ‘와릉지판(瓦楞紙板)’이라고 부른다.
▶폐지를 재활용해 만드는 골판지는 ‘튼튼하고, 가볍고, 저렴해야 하는’ 포장재의 3대 필수 요소를 모두 갖췄다. 종이 주름이 트러스 구조와 비슷해 내구성이 좋고 충격을 잘 흡수한다. 중간의 빈 공간은 단열 기능을 발휘해 농수산물, 식품 운반에도 적합하다. 재료가 종이라 가볍고 값도 싸다. 워낙 경쟁력 있는 소재라 포장재를 넘어 용도가 계속 확장돼 왔다. 2차 세계대전 때 독일군이 전사자용 관으로 사용한 이후 골판지 관이 세계적으로 확산됐다. 2020년 도쿄 올림픽, 2024년 파리 올림픽에선 선수촌에 골판지 침대가 사용됐다. 세계적 가구업체 이케아에선 골판지로 만든 가구를 계속 선보이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에선 골판지 드론이 등장했다. 호주 업체가 매달 100대씩 우크라이나군에 납품하는 골판지 드론은 날개 폭 2m, 무게 2.4㎏으로, 자기 무게보다 더 무거운 3㎏의 폭탄을 달고 최대 120㎞까지 비행한다. 1기당 460만원 정도로 가격도 저렴하다. 종이여서 레이더에도 거의 잡히지 않는다. 호주 신문은 골판지 드론이 러시아 비행장을 급습해 전투기 5대를 파괴했다고 보도했다. 가성비 ‘끝판 왕’이다.
▶북한이 발 빠르게 나서 지난달 골판지 드론으로 보이는 자폭형 무인기로 BMW 승용차를 공격하는 영상을 공개했다. 그러자 우리 군도 골판지 드론 100여 대를 도입한다고 나섰다. 배달 산업의 번창 덕에 한국은 세계 9위 골판지 생산국이다. 그런 나라의 군이 골판지 드론 아이디어도 못 내고, 전쟁터에 등장한 뒤에도 손 놓고 있다가, 북한이 하니 뒤따라간다. 이런 일이 한둘이 아니어서 한숨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