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 5월 17일, 신군부가 ‘비상계엄’을 제주도를 포함한 전국에 선포했다. 1979년 10월 26일 박정희 대통령 시해 사건으로 제주도를 제외하고 선포한 ‘부분 계엄’을 확대한 것이다. 미국 국무부는 즉각 여행 경보를 발령했다. “대한민국에서 비상계엄이 선포된 점을 고려해 중대한 개인적 사유가 있지 않은 이상 미국 시민들이 한국으로 여행하지 않기를 권고한다.” 사실상 ‘여행 금지령’이었다.
▶미국이 공식적 ‘여행 경보’를 도입한 것은 1978년이다. 당초엔 항공사·여행사를 위한 시스템이었다. 그런데 1988년 12월 런던에서 뉴욕으로 가던 팬암 항공 103편이 폭탄 테러를 당해 270명이 사망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테러 발생 전 미국 정부가 “팬암 항공기가 폭파될 것”이란 구체적 익명 제보를 받았지만, 일반 여행객에게 공유되지 않았다는 문제가 제기됐기 때문이다. 여행 경보는 대중을 위한 것으로 재편됐고, 다른 국가로도 퍼졌다. 2010년대 들어 한국을 포함한 많은 국가가 1단계(일상적 유의)부터 4단계(여행 금지)까지 등급을 나눈 여행 경보 시스템을 채택했다.
▶2020년 6월 1일 호주 정부가 미국에 대해 “여행하지 말라”는 경보를 발령했다. 흑인 조지 플로이드가 백인 경찰에 의해 숨진 뒤 여러 미국 대도시에 폭동이 발생하고 통금령도 내려졌기 때문이다. 코로나 팬데믹 탓에 많은 국가가 서로 여행 제한 조치를 하고 있는 때여서 주목을 못 받았지만 미국으로선 큰 망신이었다.
▶3일 밤 윤석열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한 뒤, 미국·캐나다·호주 등 많은 국가가 한국에 대한 여행 경보를 발령했다. 한국 여행 등급 자체는 대체로 안전하다는 취지의 1단계로 유지하면서도, 시위가 지속될 예정이니 군중이 모이는 곳을 피하라고 경고한 국가가 많다. ‘광화문’ ‘삼각지’ ‘여의도’ 등 지명도 구체적으로 언급되고 있다.
▶1980년 한국 여행 금지령은 그해 6월 2일 주한 미국 대사관이 “현재 한국이 비교적 진정된 상태로 보인다”는 전문을 워싱턴에 보내고서야 취소됐다. 이렇게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줄 알았던 계엄 선포가 다시 등장하고 외국에서 한국에 대해 여행 경보를 내리는 일이 벌어졌다. 한국은 최근 세계 여행객들 사이에 핫한 나라 중 하나였다. 그런 나라에서 2024년에 수십 년 전 일이 다시 벌어질 줄 안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러시아와 같은 문제 국가가 ‘한국 상황이 우려스럽다’고 한다니 참으로 당혹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