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김성규

1970년대 박봉의 한국 외교관들은 부부 동반 파티에 입고 갈 연미복, 드레스를 살 돈이 없었다. 궁여지책으로 쓴 꼼수가 백화점에서 옷을 산 뒤, 파티 당일 하루 입고, 그다음 날 반품하는 것이었다. 필자에게 이 얘기를 들려준 주요국 대사 아내는 “가격 꼬리표를 감추느라 식은땀을 흘렸고, 옷을 더럽히지 않으려고 무지 애를 써야 했다”고 쓴웃음을 지었다.

▶유럽 특파원 시절, 식탁을 구입했다가 불량품이 배달돼 애를 먹었다. 상판 2개를 붙여 6인용 식탁이 되는 구조였는데, 두 상판 아귀가 맞지 않았다. 가구점에 반품을 요구했더니 한 달 반이나 지난 뒤 새 제품으로 교환해 줬는데 역시 아귀가 맞지 않았다. 반면 조립 가구 판매점, 이케아의 ‘반품 코너’에선 가성비 좋은 소품 가구를 얻을 수 있는 재미를 맛봤다. 약간의 흠결만 감수하면 가격도 싸고 직접 조립하는 수고도 덜 수 있어 좋았다.

▶택배 천국, 한국에선 반품 서비스도 세계 최고다. 온라인 쇼핑몰을 통해 산 물건이 마음에 안 들거나 하자가 있을 때, 집 앞에 내놓기만 하면 도로 가져간다. 반품을 전제로 색상·사이즈별로 옷, 신발을 구매한 뒤 하나만 남기고, 나머지는 반품하는 소비자도 많다. 신선 식품을 구입한 뒤 일부를 먹고 반품하거나, 여름철 선풍기를 산 뒤 실컷 쓰고, 반품 기한(30일) 하루 전 반품을 요구하는 ‘블랙 컨슈머’도 있다고 한다.

▶알리, 테무 등 중국 전자 상거래 업체들은 한국 시장을 공략할 때 ‘무료 반품’ 카드를 적극 활용했다. 반품을 요구하면, ‘제품 폐기 요청’과 함께 반품 없이 환불해 주고, 그 비용은 판매자에게 떠넘겼다. 참다 못한 중국 판매업자들이 본사로 몰려가 시위를 벌였다. ‘무기한 반품’을 자랑해 온 코스트코는 비용 부담이 커지자, TV, 세탁기, 로봇청소기 등 전자 제품의 경우 반품 허용 기간을 3개월로 제한했다.

▶유통업체들은 반품 물건을 상태에 따라 ‘미개봉/최상/상/중’ 4등급으로 분류한 뒤, 최대 90% 할인한 가격으로 재판매한다. 쿠팡, 11번가, 롯데홈쇼핑 등에선 반품 상품만 따로 파는 ‘반품 마켓’ 코너를 운영하고 있다. 기업들은 반품 비용을 줄이려 AI(인공지능)와 빅데이터 기술을 동원하고 있다. 옷, 신발을 가상으로 착용해 볼 수 있는 ‘가상 피팅’, 신체 크기를 정교하게 측정하는 앱까지 만들었다. 고객의 반품 요청이 들어오면 AI 상담원이 “가격을 50% 깎아줄 테니 그냥 사용하시라”면서 협상을 시도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