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이철원

최근 인천에서 배달용 로봇 ‘뉴비’가 무단 횡단을 하다가 차량에 부딪히는 사고가 발생했다. 보험 처리 과정에서 “이 로봇은 단순한 기계가 아니라 ‘보행자’이기 때문에 운전자 과실도 있다”는 얘기에 운전자가 황당해하면서 인터넷에 사연을 올렸다. 도로교통법에 따르면 보행자가 무단 횡단을 했더라도 사고를 낸 운전자에게도 책임을 물린다. ‘뉴비’도 보행자 자격을 취득했으니 인간과 같은 법 조항과 보험을 적용받는다는 것이다.

▶로봇이 사람 비슷한 대우를 받는 건 공상과학 영화에서 보던 얘기였다. 영화 ‘스타워즈’ 시리즈에 등장하는 원통형 로봇 R2D2는 성실하고 의리 있으면서 재치 넘치는 캐릭터로 많은 사랑을 받아 시리즈 전편에 등장하는 ‘주연급’ 로봇이다.

▶이제는 현실에서 로봇의 법적 권리를 논하는 시대다. 지난 2017년 유럽의회는 로봇에게 ‘전자 인간(electronic personhood)’이라는 새로운 개념의 법적 지위를 부여하는 ‘로봇 시민법 규칙’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유럽 각국이 준수해야 하는 법은 아니고 관련 국내법 만들 때 참고하라고 낸 권고문이지만 논란을 야기했다. 로봇은 자율성과 감정을 가지지 못하기 때문에 법적 권리까지 주는 건 지나치다고 유럽 각국의 로봇 전문가, 변호사, 기업가 등이 반대 서한을 냈다.

▶학계에서도 여전히 논쟁거리다. 로봇의 법적 지위 부여는 시기상조라는 입장도 많다. 반면 조안나 브라이슨(독일 헤르티행정대학) 같은 학자는 로봇이 자율적으로 행동할 경우 그 결과에 책임을 물려야 한다며 로봇의 법적 지위 부여를 주도한다. 로봇을 도덕적 존재로 대우해야 한다는 학자(데이비드 건켈 미국 노던일리노이대 교수)도 있다. 물론 이때도 로봇을 인간처럼 감정을 가진 존재로 바라보자는 건 아니고 인간 사회에서 점점 더 많은 역할을 하기 때문에 그에 상응하는 법적, 사회적 책임을 부과하자는 취지다.

▶국내에서는 지난해 11월부터 ‘지능형 로봇법’이 시행되면서 배달, 순찰, 청소 등의 서비스를 수행하는 실외 이동 로봇은 운행안정 인증을 받을 경우 법적으로 보행자 지위를 얻게 됐다. 로봇을 보호하려고 만든 법은 아니다. 로봇도 보행자와 동일하게 무단 횡단 금지 등 도로교통법을 지켜야 한다. 어기면 범칙금도 물린다. 로봇이 사고를 일으킨 경우, 법적 지위가 없으면 피해자가 보상을 받기 어려운 경우가 생길 수 있어 만든 조항이다. 똑똑해진 기계와 더불어 살려니 그에 걸맞은 법과 제도도 촘촘하게 갖춰야 한다. 그래도 잘 받아들여지지 않는 것은 어쩔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