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루, 드디어 우리는 짐을 꾸리고 있는 중이오. 우리가 하고자 하는 일이 수포로 돌아가지 않도록 빌고 있소. 내일부터 며칠 동안 일어날 소식은 신문을 통해 알 것이오.” 독일군 사단장 롬멜이 1940년 5월 전장에서 아내에게 보낸 편지다. 롬멜이 아내에게 예고한 것은 프랑스 마지노선 돌파였고 작전은 대성공이었다. ‘롬멜전사록’에 나오는 내용이다.

일러스트=이철원

▶전쟁터에서도 많은 글이 쓰였겠지만 그중에서도 편지는 가장 내밀한 감정이 담겨 있다. 어머니·아내 등 가까운 가족이나 연인에게 보내는 편지일수록 애틋할 수밖에 없다. 나폴레옹은 전투가 끝나면 아내 조세핀에게 편지를 쓰기 위해 서둘러 텐트로 들어갔다. 그는 생전 5만5000통의 편지를 썼다. 오스트리아 철학자 비트켄슈타인은 1914년 1차 대전이 발발하자 자원입대했다. 그는 최전방 근무를 자원해 적탄이 귓전을 스치는 관측 망루에서 “총격을 받고 있다. 총성이 날 때마다 영혼이 움찔거린다. 살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고 썼다.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의 영화 ‘이오지마에서 온 편지’는 실제로 이오지마 전투에서 발견한 편지를 모티프로 제작했다. 일본군 병사가 아내에게 남긴 편지엔 “갓 태어난 딸이 보고 싶다”와 같은 내용이 담겨 있었다. 태평양전쟁 등에 참전한 일본 병사들의 편지를 모은 책엔 ‘고향집 나무와 꽃들이 잘 있는지 궁금하다, 초밥을 먹고 싶다’ 같은 내용들이 많았다고 한다. 과달카날 전투에서 죽은 일본군 병사의 품에선 ‘어머니, 제가 내일 이 풀 향기를 맡을 수 있을까요’라고 쓴 편지가 나왔다.

▶전쟁터에서 오는 편지도 받지 못한 사람들도 많다. 성석제 단편소설 ‘협죽도 그늘 아래’ 주인공은 결혼하자마자 6·25가 나서 합방도 하지 못한 채 학병으로 입대한 남편을 기다리는 70세 할머니다. 스무 살에 결혼했으니 50년째 남편 소식을 기다리는 것이다. 집으로 온 것은 남편 편지가 아니라 행방불명이라는 통보였다. 그래도 할머니는 동네 입구 협죽도 그늘 아래에 앉아 여전히 남편의 편지를 기다린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파병됐다가 사망한 북한군 병사 편지가 공개됐다. “정다운 아버지 어머니의 품을 떠나 여기 로씨야 땅에서…”로 시작하는 편지는 친구 생일을 축하하려고 쓴 짧은 편지다. 내용을 보면 제대로 끝맺지도 못한 것 같다. 이 편지 하나를 남기고 눈 덮인 이역만리 땅에서 시신이 됐다. 왜 싸우는지, 왜 죽는지도 모른 채 식어간 이 병사는 마지막 순간에 누구를, 무엇을 떠올렸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