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정상적으로 불지 않아도 큰 문제다. 작년 11월 유럽에서는 ‘둥켈플라우테(Dunkelflaute)’ 현상이 발생했다. 독일어로 ‘어둡고 고요한 상태’라는 말인데 바람도 불지 않고 햇빛도 거의 없는 현상을 말한다. 이 현상이 며칠 지속되면서 태양광과 풍력 발전량이 급감했다. 그 여파로 신재생에너지에 의존도가 높은 독일 전기 도매 요금은 평소에 비해 20배 이상 폭등했다.

▶황사는 바람의 거대한 에너지를 실감하게 하는 현상이다. 중국과 몽골에서 발생한 황사는 수천km 날아와 한반도에만 한 번에 약 8만t의 흙먼지를 쏟아놓는다. 15t 덤프트럭 5000대 분량이다. 황사는 부정적 영향이 크지만 긍정적 영향도 없지 않다. 이 흙먼지가 산성화하는 우리나라 표토층을 중화해 주고 바다의 적조 현상도 줄여주는 것이다. 그 경제적 가치가 연간 수천억 원이라고 한다.

일러스트=이철원

▶알프스산맥에선 산 위에서 골짜기로 고온의 바람이 불어 내릴 때가 있다. 지중해 쪽 습한 공기가 알프스를 넘어 독일과 스위스를 지나갈 때 나타나는 현상이다. 이 바람을 ‘푄(Föhn)’이라 불렀는데, 고트어로 ‘뜨거운 불’이라는 뜻이다. 습기를 머금은 바람이 산을 타고 올라가면 100m마다 약 0.5도씩 기온이 떨어진다. 어느 정도 올라가면 수증기가 뭉쳐 비나 눈으로 내린다. 습기가 빠진 건조한 바람은 온도 변화가 커지고, 산을 내려갈 때는 100m마다 약 1도씩 오른다. 이 때문에 산을 타고 내려오며 뜨겁고 건조한 바람으로 변하는 것이다.

▶이 현상은 악동처럼 세계 곳곳에서 바람 재앙을 일으키고 있다. 우리나라 양간지풍(襄杆之風·양양과 간성에 부는 강한 바람)도 이 현상 때문에 생긴다. 바람이 서쪽에서 태백산맥을 넘으면 고온 건조한 강풍으로 돌변한다. 양간지풍은 자주 대형 산불을 일으키는데 2005년 낙산사 화재가 대표적이다. 반대로 봄철 동해에서 태백산맥을 넘어온 높새바람은 너무 고온 건조해 농작물에 피해를 줄 정도다.

▶미국에서는 태평양에서 로키산맥을 넘어 동쪽으로 부는 바람을 치누크(Chinook), 동쪽에서 서부에 영향을 주는 바람을 샌타애나(Santa Ana)라고 부른다. 지금 미국 LA를 잿더미로 만들고 있는 바람이 바로 샌타애나다. 이 바람은 주기적으로 큰 피해를 주고 사람을 공격적으로 만든다고 ‘악마의 바람(Diablo Wind)’이라고도 부른다. 악마의 바람이 ‘천사의 도시’를 공격하고 있는 셈이다. LA 산불이 더 이상 큰 피해 없이 잦아들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