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용원(58) 조선일보 군사전문 기자는 한국 언론계에서 새로운 길을 열어가고 있습니다. 1990년 2월부터 33년째 조선일보(朝鮮日報) 한 회사에 근무하면서 29년째 ‘국방부’를 중심으로 군사 이슈를 취재하고 있어서입니다. 이변(異變) 없이 내년 3월 그가 국방부 출입 30년을 맞는다면, 우리나라 중앙 행정부처를 통틀어 첫번째 사례가 됩니다.

2013년 3월 김관진 당시 국방장관으로부터 ‘출입 20년 감사장’을 받은 유용원 조선일보 군사전문기자/유용원 제공

◇누적 방문 4억명 사이트와 7개 SNS 운영

그는 디지털과 신문에 기사(記事·news story) 쓰는 ‘본업’을 넘어 종횡무진 활약하고 있습니다. 2001년 유 기자가 시작한 ‘유용원의 군사 세계’ 웹사이트는 누적 방문자 4억2000만명이 넘는 국내 최대 군사 전문 커뮤니티로 자리잡았습니다. ‘비밀’이라는 별명으로도 불립니다. 유튜브 ‘유용원TV’(구독자 25만명)와 페이스북(팔로워 6만8000여명), 네이버TV(구독자 1만1000여명), 카카오채널, 인스타그램(2개) 같은 7개 채널도 그는 운영합니다.

유 기자는 <우리도 핵무장을 해야 하는가>(2016년) <유용원의 밀리터리 시크릿>(2020년) <미중 패권경쟁과 한국의 생존전략>(2021년) 등 3권의 단독저서와 <무기바이블 1~4> <북한군 시크릿 리포트> 등 8권의 공저(共著)를 냈습니다. 연륜이 쌓일수록 더 정력적으로 활동하는 유용원 기자를 최근 만났습니다.

- 지금 국방부 최장수(最長壽) 출입기자인가?

“그렇다. 1993년 최연소 출입기자로 시작했는데 감개무량하다. 2013년 3월 김관진 당시 국방장관으로부터 ‘출입 20년 감사장’을 받았다. 권영해 전 장관부터 이종섭 장관까지 가까이서 취재한 국방장관만 19명이다.”

2004년 11월 방문한 이라크 자이툰 부대에서 유용원 기자/조선일보DB

- 기사 작성과 SNS, 유튜브, 웹사이트 관리 등으로 눈코뜰새 없이 바쁠 것 같다.

“매주 3~5차례 저녁 약속과 본업, 부업을 다 하려니 바쁘다. 그래서 시간을 많이 잡아먹는 골프를 끊은 지 10년이 넘었다. 주말 헬스장에서 운동하거나 평일에 ‘1일 만보 이상 걷기’로 건강을 관리한다. 10여년 전부터 홍삼, 비타민도 열심히 챙긴다. 웹사이트 관리는 2명, 유튜브 영상은 1명 등 3명의 도움을 받고 있다.”

◇“조선일보사 전폭 지원 없었으면 불가능”

- 지난 33년 신문기자 생활을 자평한다면?

“한 눈 안팔고 열심히 한 우물만 팠더니 이제는 비교적 보람 있고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는 사람이라고나 할까. 주변에선 ‘취미가 직업이 된 행운아’라고 얘기한다. 초등학교 때부터 취미가 군사, 특히 무기쪽이었다. 제 노력만이 아니라 회사(조선일보)의 전폭적인 이해와 지원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아무리 군사분야에 좀 아는 게 있었더라도 여느 기자처럼 출입처가 2~3년마다 바뀌었다면 오늘의 ‘유용원’은 없었을 것이다.”

유 기자의 이어지는 말입니다.

“그동안 45차례 조선일보 사내 특종상을 받아 최다(最多) 특종상 수상자가 된 것도 큰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얼마 전 조백건 기자 인터뷰기사가 실렸던데, 저는 조 기자가 조만간 제 기록을 깨줄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고 있습니다.(웃음)”

유용원 기자가 조선일보 사보 2012년 4월12일자에 쓴 '나의 취재기'/인터넷 캡처

고(故) 정두언 전 국회 국방위원장은 2016년 발간된 유용원 기자의 저서 <우리도 핵무장을 해야 하는가>에서 ‘우리는 왜 유용원이 필요한가?’라는 제목의 추천사에서 이렇게 썼습니다.

“군사 문제로 인한 사회적 갈등과 불신이 깊어가는 이때, 우리는 이 문제들에 대해 권위를 가지고 정리해줄 존재가 절실합니다. 그 역할을 할 사람 중에 유용원이 두드러집니다. 그러기 위해 유용원은 특유의 열정과 신뢰로 가일층 정진해야 하며, 우리 사회는 그를 전문가로서 진지하게 대접하고 또 십분 활용해야 할 것입니다.”

- 신문기자가 되기로 마음 먹은 ‘결정적인 계기’라면?

“충남 천안에서 초중고를 다녔는데 초등학교 때 매일 전쟁놀이하고 전쟁만화를 빌려 봤다. 대학 때 서울 용산, 명동 등지의 헌책방에서 군사·무기 관련 외국 잡지들을 구해 보면서 너무나 기쁘고 반가웠다. 학부(서울대 경제학과) 졸업후 언론쪽이 군사 분야에 약하다는 얘기를 듣고 신문기자를 지원했다. 1990년 조선일보 출판국 월간조선(月刊朝鮮)에 입사해 3년쯤 근무하다가 같은 회사 편집국으로 옮겨 운좋게 초년병 시절부터 국방부를 출입하게 됐다.”

- 기자 생활 중 제일 힘들었던 순간과 보람을 느낀 순간이라면?

“2010년 3월 천안함 폭침 사건 때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가장 힘들었다. 2개월여 동안 매일 밤늦게 퇴근했는데 사건 원인 관련해 일각에서 계속 음모설을 제기해 피곤했다. 가장 보람을 느낀 기사 중 하나는 2001년 7월 게재된 낡은 동빙고 군인아파트 르포 기사이다. 당시 서울 한복판에 비가 오면 물이 새는, 30년 이상된 15~18평형 노후 아파트에서 국방부·합참의 중·대령급 엘리트 장교들이 살고 있었다. 그 기사를 보고 한 영관장교 부인이 ‘고맙다’며 울면서 전화를 걸어오는 등 반응이 폭발적이었다. 그뒤 새 아파트가 들어섰다. 그 아파트를 요즘 멀리서 지나다 보면 그때 생각이 난다.”

유 기자의 이어지는 말입니다.

“월간조선 1993년1월호에 ‘하나회는 육사 20기 이후에도 영관급까지 조직돼 있다’는 기사도 나름 역사적 의미를 갖는 특종으로 군 내에서 평가돼 왔다. 이 기사를 계기로 ‘유용원’이라는 기자 이름이 나름 알려졌다. 비(非)하나회 출신의 새로운 군 수뇌부가 내 특종 기사를 다 읽고서 신참 출입 기자인 나를 주목하게 됐다. 1993년 당시 국방부 출입기자들은 대부분 부장 승진 직전의 고참급 차장들이었다.”

유용원 기자가 쓴 서울 용산구 동빙고동 군인 아파트 기사. 조선일보 2001년 7월9일자 31면(사회면) 톱기사로 실렸다./인터넷 캡처

◇“기자는 이름 석자로 사는 직업”

- ‘군사 전문기자’로서 30년 롱런하는 비결이라면?

“해당 분야에 대한 전문지식은 기본이고 열정(熱情)이 있어야 한다고 본다. 데스크가 시켜서가 아니라 본인이 좋아서 해야 한다는 얘기이다. 수동적으로 일하는 사람은 미치다시피 좋아서 일하는 사람을 결코 이길 수가 없다. ‘기자는 자기 이름 석자 가지고 사는 직업’이라는 자세로 가장 기본적이고 중요한 덕목인 신뢰를 잃지 않는 것도 중요하다.”

유 기자는 “전인미답(前人未踏)의 개척로를 연다는 자세로 기자 생활을 해왔는데 그게 일종의 엔돌핀을 돌게 하는 원동력이었던 것 같다. 좀 건방진 얘기일 수 있지만, 고 정두언 위원장이 나에게 주문한 ‘중심을 잡아 주는 역할’을 하려 노력해 왔는데 그것도 롱런하는 데 도움이 됐다”고 말했습니다.

'비밀'로 불리는 유용원 군사세계 웹사이트/인터넷 캡처

- 기자로서, 조선일보 기자로서 지켜오는 원칙이나 기준이 있다면?

“조선일보는 ‘할 말은 하는 신문’으로 평가받는데, 내 자신도 ‘할 말은 하는 기자’가 되려 노력해왔다. 시간이 지나면서 출입처(국방부) 입장을 이해하고 우호적인 방향으로 변해온 측면도 있지만, 그럼에도 정말 아닌 건 호되게 비판하려 해왔다. ‘나에게 창피하지 않고 후배에게 부끄럽지 않은 기자’가 되어야겠다는 것도 나의 중요한 원칙이다.”

- 최근 활동이 예전보다 더 왕성해진 것 같다.

“사실 2021년부터 쓰는 기사의 양(量)이 몇 년전 보다 더 많다. 매주 일요일마다 영상을 중심으로 한 온라인 기사인 ‘밀톡’과 뉴스레터 ‘유용원의 밀리터리 시크릿’(매주 화요일 아침 발송) 등 2건의 기사를 고정적으로 쓴다. 이슈가 있을 때마다 별도로 신문 기사를 쓰고 있다. 신문 칼럼인 ‘유용원의 군사세계’는 4~5주마다 게재한다. 국방TV 무기전문 프로그램인 ‘본게임2′에 2018년 이후 매주 고정 출연하고 있다. ‘본게임2′는 50분 분량으로 유튜브에서 매회 평균 10만~20만회 이상 조회 수를 기록한다. 페이스북은 ‘비밀’ 콘텐츠 링크로 매일 8건 정도 업로드한다. 웹사이트와 페이스북 등 개인 채널 관리에 매일 2~3시간 이상 투자하고 있다. 이밖에 강연, 각종 세미나에 수시로 참석하고 있다.”

- 기자 직을 그만 둘까 고민하는 후배들에게 조언한다면?

“평소 능력과 열정을 높이 평가하고 존경해온 한 후배 기자가 얼마 전 이직해 충격을 받았다. ‘선배의 배부른 소리’처럼 들릴까봐 조심스럽지만 생명력 있게 길게 사는 길이 무엇인지 한번쯤 더 생각하면 좋겠다는 말씀을 감히 드린다.”

유용원 기자가 2021년 출간한 세 번째 단독저서/인터넷 캡처

◇“대기업 임원, 고위 공무원 안 부럽다”

- 평소 자료 축적과 공부는 어떻게 하나?

“해외 전문사이트와 국내 서적을 빠짐없이 읽으려 한다. 칼럼이나 기사를 준비할 때도 각종 서적과 논문 등을 섭렵하며 공부한다. 신문 칼럼은 1~2주 이상 주제와 내용을 숙고하며 자료를 넓고 깊게 수집해 파악한다. 내 웹사이트를 중심으로 자료도 계속 축적한다. 세미나에 참석한 뒤 유용한 발표자료가 있으면 주최측의 양해를 구해 사이트 자료실에 꼭 올려놓는다.”

- 신문사에서 편집국장이나 정치(사회) 부장 같은 보직(補職)을 맡지 않았는데 아쉬움은 없나?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부장이나 국장이 젊은 시절 한때 부러웠다. 그러나 전문기자의 길이 나에게 가장 맞고 잘 선택했다고 생각한다. 다시 선택하라고 해도 나는 일고의 여지 없이 전문기자의 길을 택할 것이다. 여러 기자들을 관리하는 것은 적성에 맞지도 않고, 전문기자가 관리자보다 생명력이 훨씬 길다.”

유 기자는 “대기업 임원이나 고위 공무원이 부럽지 않다. 이들은 잠시 반짝하는 존재인 반면, 전문기자는 좋아하는 일을 생명력있게 계속 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습니다.

- 전문기자가 되려는 후배 기자들에게 유망 분야를 추천한다면?

“요즘은 전문화된 유튜브 채널 등 강호(江湖)의 민간 고수들이 많아 전문기자로 성공하려면 더 굳센 결의와 노력이 필요하다. 상대적으로 유망한 분야는 4차산업혁명 등과 관련된 과학기술 분야가 아닐까 한다. 빅데이터, 드론, 로봇 등 각론으로 접근해야 나중에 비즈니스 모델도 생길 수 있을 것이다. 항공우주 분야, 헬스케어 등 실버산업 분야도 괜찮을 듯 하다.”

- 기자가 의사, 변호사처럼 존경받으며 정년없이 일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존경받으려면 기사 작성 외에 플러스 알파 역할이 필요하다. 전문기자로 자리잡으려면 출입처와 해당 분야 사람들을 ‘심복(心服)’시킬 수 있어야 한다. 나의 경우 예비역 장성 및 전문가 그룹과 2006년 사단법인 ‘한국국방안보포럼’(KODEF)을 창립해 16년째 꾸려오고 있다. 그동안 50여 차례 세미나와 ‘주한미군 및 카투사 순직자 추모비’ ‘국방과학연구소 격려비’ ‘공군 순직 부자 조종사 추모비’ ‘해군 잠수함사령부 격려 조형물’ 등 각종 조형물 건립, 군부대 위문행사, 천안함 재단 기부 같은 활동을 해왔다. 이런 활동을 30년 가까이 변함 없이 하니, 사람들이 진정성과 열정을 알아주더라.”

사단법인 ‘한국국방안보포럼’(KODEF)이 2012년 개최한 '주한미군 및 카투사 순직자 추모비' 제막식(除幕式·동상이나 기념비 따위를 다 만든 뒤에 완공을 공포하는 의식) 모습/유용원 제공

그는 이렇게 강조했습니다.

“단순히 국방부를 오래 출입했다고 전문기자로 불리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누구나 해병대가 될 수 있었다면 나는 해병대가 되지 않았을 것’이라는 말도 있지 않나? 아무리 오래 국방부를 담당했더라도 노트북PC 들고 별 생각 없이 출퇴근만 했다면 진정한 전문기자가 될 수 없다.”

◇“조갑제 대표 영향...명저 쓰고 싶다”

- 본인에게 영향을 많이 준 언론인이나 ‘롤 모델’이 있다면?

“입사후 처음 월간조선에서 근무하며 기자로서의 ‘기초군사훈련’을 받았는데, 당시 조갑제 부장(현 조갑제닷컴 대표)께서 데스크셨다. 그가 나에게 일을 많이 시켜 밤도 새우고 고생을 많이 했지만 기자생활에 큰 자양분이 됐다. 조갑제 대표는 하룻밤에 200자 원고지 200장을 일필휘지로 써내려가는, 북한 핵문제부터 대형 국내외 사건까지 모든 분야를 커버한 이 시대의 마지막 올라운드 플레이어 대기자이다. 지금도 필력이 왕성한 조선일보의 김대중 칼럼니스트와 강천석 고문도 영감과 자극을 주시는 존경하는 선배이다.”

2016년 12월 조갑제 '조갑제 닷컴 대표'가 TV조선 ‘시사토크 판’에 출연해 국내외 이슈를 진단하고 있다./조선일보DB
고인이 된 돈 오버도버 워싱턴포스트 기자가 생전에 쓴 저서 <The Two Koreas>/조선일보DB

그는 “미국 워싱턴포스트 국제전문기자로 유명했던 고(故) 돈 오버도퍼 존스홉킨스대 교수가 나에게 ‘롤 모델’ 비슷한 존재이다. 앞으로 좀더 시간 여유가 생긴다면 오버도퍼 교수의 <두 개의 한국(The Two Koreas)> 같은 책을 쓰고 싶다”고 했습니다.

- 10~20년 후 본인 모습을 그려 본다면?

“그때에도 저널리스트로 활동할지는 장담할 수 없지만 생명력 있게 길게 사는 길을 택하고 싶다. 고위 공직 같은 자리에 따른 권력은 유한(有限)하지만 명예에 따른 힘(선한 영향력)은 무한(無限)하다고 본다. 앞으로 웹사이트 등 개인 채널의 역할이 더 커질 것 같다. 유용원의 군사세계 사이트는 21년간 각종 자료를 축적하다보니 사진만 200만장이 넘는다. 우리나라 민간 부문에서 가장 많은 군사 관련 자료를 축적했다는 평가를 받는 만큼, 앞으로 이를 계속 업그레이드하며 군사 전문가 및 일반 대중들과 긴밀하게 소통하고 싶다.”

유 기자는 이렇게 덧붙였습니다.

“제 웹사이트(유용원의 군사 세계)의 영향을 받아 사관학교, ROTC(학군사관후보생), 군사학과에 들어가 장교가 됐거나 부사관의 길을 걷고 있는 이른바 ‘비밀(bemil) 키즈’들이 적지 않다. 현재 장교는 대위~소령쯤 됐는데 앞으로 이들이 장군, 참모총장 등으로 커가는 모습을 보는 것도 내 꿈 중 하나이다.”

2022년 3월3일 오전 육군학생군사학교에서 열린 2022년 대한민국 학군장교(ROTC) 통합 임관식에서 주요 인사와 신임 장교들이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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