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한국을 방문한 세계간호협의회(ICN) 아네트 케네디 회장은 두 번 크게 놀랐다고 한다. 간호사 숫자가 세계에서 열 손가락 안에 꼽히는 나라인데도 정부 부처에 간호 담당 과도 없고, 간호사의 전문성을 살리고 환자 안전을 지킬 간호법도 없는 데 충격받았다고 한다. 한국은 WHO(세계보건기구)가 2004년부터 개최하는 세계 간호 정책 담당자 회의에도 참석하지 못하고 있다. 정부 부처에 간호 담당 과가 없다는 것은 체계적이고 일관성 있는 간호 정책을 세우지 못하는 것을 자인하는 셈이다. 간호법은 미국·일본 등 선진국은 물론 전 세계 90국이 가지고 있다.

왜 유독 한국에만 간호법이 없을까. 보건 당국은 모든 의료인을 총괄하는 ‘의료법’이 있기 때문에 간호법을 따로 만들 필요가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일본, 대만, 필리핀, 캐나다 등 많은 국가는 의료인을 총괄하는 의료법과는 별도로 간호법, 의사법, 치과의사법 등을 제정해 전문성을 살리고 있다.

1951년 의료법이 제정될 당시 의사가 간호사보다 3배 많았다. 그래서 의사와 의료 기관 위주로 만들어졌다. 하지만 지금은 간호사가 46만명으로 의사(13만명)의 3.5배가 되었다. 보건 의료 환경 변화에 따라 간호사의 활동 범위도 의료 기관뿐 아니라 만성 질환의 안정적 관리 등 다양한 방면으로 확대되고 있다. 현행 의료법은 이처럼 전문화되고 다양화된 간호사의 활동 영역을 담는 데 한계가 있다. 간호사들은 평균 7년 근무 후 이직할 정도로 고된 업무와 열악한 근무 환경에 시달리고 있다. 지난달 국회에 상정된 간호법이 제정되면 환자의 안전 및 국민의 건강 증진, 의료비 절감 등의 효과가 예상된다. 간호법 제정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시대적 과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