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바논 주요 종파별 권력 분점 및 의석 수 배정

레바논이 위태롭다. 두 달 전 베이루트 항구 폭발 사고로 내각이 총사퇴하고 신임 총리가 임명되었지만 결국 위기 관리 정부 구성에 실패했다. 레바논 정치를 장악한 종파 간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엇갈린 탓이다. 금융 등 핵심 각료직 임명을 두고 시아파 헤즈볼라가 몽니를 부린다는 설이 유력하다. 국난 중에도 이렇다. “레바논 위기의 본질은 정치”라는 자조 어린 한탄도 들린다.

퇴색해가는 중동 정치의 희망

“레바논이야말로 스위스 이상 가는 현대사의 기적이다.” 유네스코 초대 사무총장을 지낸 줄리언 헉슬리가 1968년에 한 말이다. 그랬다. 당시 레바논은 중동 정치의 희망이었다. 1943년 프랑스에서 독립한 레바논은 중동 유일의 의회 민주주의를 구가했다. 기독교와 이슬람에 속한 18개 다양한 종파가 머리를 맞대고 인구 비례로 권력 분점을 합의하며 독립했기 때문이었다. 혈연보다 진하다는 종교 정체성에 휘둘리면 자칫 갈라지기 쉬웠지만 오히려 새 나라 건설을 위해 의기투합했다.

이후 레바논은 아랍에서 유일하게 기독교도가 대통령인 나라가 되었다. 수니파 총리, 시아파 국회의장, 드루즈파 국방장관, 그리스 정교도 외교장관 등 종파별로 각료를 맡았다. 크게 보면 내치는 무슬림이, 외교는 기독교로 역할을 분담했다. 국회 의석 수도 고정 비율로 정해졌다. 중동의 이웃 나라들이 권위주의 일색일 때 레바논은 종교 간 협치의 모범을 보여주었다. 정치학계도 주목했다. 기독교와 이슬람 제 종파를 하나로 묶어 건국한 레바논 정치 제도를 모자이크 민주주의 또는 다원통합형 협의 민주주의라 정의하며 상찬했다. 부족과 종교 귀속감이 강한 중동의 문화를 감안하면 레바논 정치 제도는 혁신적인 모델이었다.

1970년대 초까지 이 제도는 잘 작동했다. 동시에 석유 붐이 불면서 레바논은 번영을 구가했다. 걸프 산유국의 막대한 오일 달러가 레바논으로 몰렸다. 안정적 정치 제도와 서방과의 친화성 때문이었다. 투자 자금이 필요한 전 세계 금융인들은 자연스럽게 베이루트로 모여들었다. ‘중동의 스위스 레바논, 중동의 파리 베이루트’라는 비유가 들어맞는 시기였다. 지금의 두바이, 아부다비, 도하를 합한 듯한 중동의 허브였다고나 할까?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아무리 좋은 제도라 해도 사람들의 권력 욕심은 다스리지 못했다. 시간이 지나며 인구 변화가 생기자 각 종파는 서로 자기 인구를 헤아리며 권력 확대를 꾀했다. 특히 이슬람 시아파의 압도적인 인구 증가는 레바논 정치 지형을 뒤흔들었다. 시아파는 더 큰 권력을 요구하기 시작했다. 헤즈볼라 출현의 배경이다. 국가보다 종파가 선명해지면서 균열은 심각해졌다. 1975년부터 기나긴 레바논 내전이 시작되었고, 아름다운 베이루트는 총격전의 거리로 변했다. 1989년 내전 종식 이후에도 여전히 레바논 정치는 반목과 갈등을 겪고 있다. 종파가 서로 양보하며 칭찬받던 레바논은 바로 그 종파로 인해 위기에 몰렸다. 종파 정치의 위기는 다음과 같은 양상으로 전개되었다.

특정 가문·인맥이 종파 사유화

인남식 국립외교원 교수·중동정치

첫째 특정 가문과 특정 인맥의 종파 사유화다. 마론파 기독교를 대표하는 제마옐 가문, 수니파 이슬람의 하리리 가문, 드루즈파 줌블라트 가문 등이 종파 내 권력을 독점해왔다. 권력 대물림도 심심치 않은 일상이 되었다. 시아파의 경우 가문보다는 특정인 중심의 권력 전횡이 도드라졌다. 건전한 의회 민주주의의 골간은 자유로운 정치 참여와 다양한 충원이어야 한다. 그러나 특정 세력에 의한 위계가 강하게 나타나면서 레바논 정치는 삐걱거리기 시작한다.

둘째, 사유화에 이은 종파 간 과두정치다. 국가 정책과 시행을 위해서는 종파 대표 간 합의가 필수적이었다. 이들 사이가 벌어지거나 이견이 있으면 정부 기능에 문제가 생기기 일쑤였다. 과두정치는 책임정치와 거리가 멀다. 차라리 특정 종파가 독자적으로 집권할 수 있다면 전권을 갖고 일을 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종파 간 권력 분점으로 인한 과두정은 권한과 책임을 뒤섞어 놓았다. 베이루트 폭발 사고가 그 전형적인 예다. 7년간 고위험 폭발물이 아무 안전 장치 없이 항만 창고에 무방비로 보관되어 있었다. 항만 관계자들이 요로에 6차례의 탄원을 했음에도 자기 종파 관할이 아니라는 이유로 정부 기관, 심지어 법원까지 외면하면서 터진 사고다.

셋째, 종파들은 영향력 유지를 위해 외세를 끌어들였다. 기독교는 주로 프랑스와 미국, 이슬람 수니파는 사우디아라비아와 연대했다. 시아파 헤즈볼라는 이란과 손잡아왔다. 일종의 후견-피후견 관계 양상이 나타났다. 치고받고 싸우더라도 안에서 논쟁해야 한다. 자신들의 문제를 외국 주요 국가에 맡기다 보니 항상 사달이 난다. 이스라엘과 시리아 등이 주권 국가 레바논에 들어와 자의적으로 활보하며 전횡을 일삼게 된 배경이다.

넷째, ‘국가 안의 국가들’이 나타나고 있다. 종파별로 자신의 지역 거점 그리고 관할 부처를 중심으로 자기 사람들만을 위한 정치를 하는 것이다. 국가 안에서 금이 그어지고 통합은커녕 편 가름 정치가 일어난다. 헤즈볼라의 경우 시아파 공동체 내에서 학교, 병원 및 각종 복지 시스템을 운영하는 등 정부에 준하는 기능을 하고 있다. 안보와 금융 부문에서도 독점적 권한을 행사하고 있다. 규모는 다르지만 여타 종파도 자기 지역, 자기 분야에서 비슷한 양상을 보인다. 국가의 파편화다. 정당별로 자기 종파 챙기기를 우선하다 보니 중앙정부의 행정력과 공권력이 취약할 수밖에 없다.

레바논 국민은 지금 새로운 정치를 요구하고 있다. 협치나 상생과 같은 듣기 좋은 말은 더 이상 필요 없다고 말한다. 종파와 상관없이 주어진 권한을 온전히 행사하고 책임을 전적으로 질 수 있는 정부를 원하고 있다. 국제사회도 레바논 정치 개혁을 강도 높게 요구하고 있다. 가능할까? 먼저 종파 정치 지도자들의 결단이 필수적이다. 그러나 대중에게 요구되는 더 근본적인 조건이 있다. 각자가 속한 종파를 내려놓고 레바논 국민으로서의 대의를 더 중히 여길 수 있는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