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파리의 혁명재판소와 전국의 4만 내지 5만 개의 혁명위원회, 자유와 생명의 안전은 뒷전으로 한 채 선하고 무고한 이를 악하고 죄 많은 자에게 넘길 수 있는 용의자법(반혁명 분자로 의심되는 자의 체포가 가능한 법), 아무런 죄도 범하지 않았지만 재판받을 기회도 없는 사람들로 가득 찬 감옥, 이러한 것들이 새로운 질서와 관례가 되었다. - 찰스 디킨스 ‘두 도시 이야기’ 중에서

찰스 디킨스 ‘두 도시 이야기’

지난 10월 3일, 광화문 일대의 차량 진입을 통제하기 위해 서울 곳곳에 검문소가 90곳 설치됐다. 경찰 버스 300대가 차벽을 쌓고 180중대, 1만 병력이 시민들의 광장 집결을 막았다. 지하철은 광화문 주변 역을 무정차 통과했고 노선 버스들도 우회해서 많은 사람이 불편을 겪었다.

코로나 확산 방지를 핑계 댔지만 반정부 시위 원천 봉쇄가 목적이었을 것이다. 집회 강행 시 체포하거나 운전면허를 취소할 것이며 관용은 일절 없다고 미리 겁박한 정부였다. 프랑스혁명을 상징하는 단두대와 효수까지 재현한 촛불 집회로 잡은 권력이니 광장이 무서운 건 당연하다. “하야 집회가 열리면 광장에 나가 끝장 토론을 해서라도 설득하겠다”던 약속이 새빨간 거짓이었음을 스스로 증명하는 것도 이해는 된다.

김규나 소설가

군중의 광기가 폭발한 프랑스혁명의 결과는 끔찍했다. 풍요와 평화를 기대한 시민들이 맞이한 건 더 지독한 굶주림과 혼란, 새로운 위정자들이 벌이는 피비린내 나는 공포정치였다. ‘크리스마스 캐럴’로 친근한 작가 찰스 디킨스는 1859년에 발표한 소설 ‘두 도시 이야기’에서 프랑스혁명이 인간 정신을 얼마나 황폐하게 만들었는가, 어떻게 개인의 생명과 자유와 사유재산을 약탈했는가, 혁명이란 결국 불필요하고 무가치한 역사의 퇴보가 아니었는가, 독자에게 묻고 있다.

집회의 자유, 표현의 자유를 외치며 광장에서 태어난 정권이 광장의 자유를 허락할 리 없다. 참고 견디는 한, 국민의 입을 막고 손발을 묶는 악법들은 우리 사회의 새로운 질서와 관례가 될 것이다. 독재란 언제나 대중의 환호를 받은 권력에 의해 합법의 탈을 쓰고 시작되어 법치란 이름으로 완성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