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팡이 진난 3월 11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맨하탄 타임스퀘어에서 뉴욕증권거래소 상장을 기념해 전광판 광고를 진행하고 있다./쿠팡

작년 3월 캘리포니아 주지사가 ‘코로나 셧다운’을 선언한 지 1년여. ‘대면 미팅’ 금지 속에서 실리콘밸리의 투자 문화도 많이 달라졌다.

스타트업 창업자가 벤처 투자자로부터 투자받는 과정은 보통 ‘결혼’에 비유한다. 첫 미팅을 갖고 마음에 들면 후속 만남을 이어가며 서로 비전이 무엇인지, 상대를 신뢰할 수 있는지, 중요한 의사 결정에 대한 생각이 맞는지 등을 확인하는 절차가 비슷하기 때문이다. 투자받기 전에는 창업자가 마치 싱글처럼 모든 의사 결정을 내렸지만, 투자를 받은 이후에는 투자자들이 포함된 이사회에서 중요 의사 결정을 함께 내리게 되는 것도 비슷한 부분이다.

코로나 확산 이전에는 첫 미팅부터 추가 미팅, 업체 실사, 투자 조건 협상, 최종 투자 결정 등 모든 과정이 대면을 통해 이뤄졌다. 현재는 모든 절차가 비대면 화상 회의로 대체됐다. 현재 미국은 백신 접종이 활발히 이뤄지고 있어 하반기부터는 정상 활동이 가능할 것으로 기대된다. 하지만 투자 업계가 다시 이전의 대면 문화로 돌아가진 않을 것 같다. 창업자와 투자자 모두 비대면이 얼마나 효율적인지 절감했기 때문이다.

일단 창업자의 소중한 시간을 아낄 수 있다. 실리콘밸리 안에서도 투자자와 대면 미팅을 위해선 30분~1시간쯤 이동해야 한다. 실리콘밸리 밖에선 며칠 걸려 찾아오는 경우도 흔하다. 보통 1시간 남짓한 미팅을 위해 2~3배 시간을 투자하는 것이다. 첫 미팅 뒤 추가 미팅으로 이어질 확률은 경험상 10% 미만이다. 창업자가 보통 10번은 미팅을 해야 한 번쯤 추가 미팅을 할 수 있다는 뜻이다. 대면으로는 일주일 이상 걸릴 10번의 미팅을 온라인으로는 단 이틀이면 할 수 있다.

/일러스트=이철원

좋은 투자 기업을 찾기 위해 최대한 많은 업체를 만나고 싶어 하는 투자자 입장에서도 시간 절약은 중요하다. 필자가 가장 좋아하는 데모데이(사업 발표회)는 스탠퍼드대 출신을 위한 액셀러레이터(육성 기관)인 ‘스타트X’의 행사다. 이곳은 코로나 이전부터 온라인으로 데모데이를 진행해왔다. 수십 업체와 투자자 수백 명이 사전에 온라인 프로필을 만든다. 투자자는 관심 있는 스타트업 분야, 성장 단계, 지역을 골라 원하는 업체의 발표 영상을 원하는 시간에 들을 수 있다. 다른 데모데이는 참석하는 데 보통 반나절을 써야 하지만 여긴 한 시간이면 투자 대상 업체 5~6곳을 접할 수 있다. 관심 있는 기업은 곧바로 이메일로 연결돼 1대1 미팅 시간을 잡을 수 있다. 너무 효율적이라 다른 데모데이에 직접 참석하기 싫어질 정도다.

향후 실리콘밸리의 모든 첫 미팅은 온라인 화상 회의를 통해 이뤄질 것이다. 다만 두 번째 만남부터는 아무래도 대면이 주가 될 것이다. 마치 온라인 데이팅 서비스에서 프로필 보고 채팅하다 직접 만나는 것처럼 말이다. 이와 함께, 첫 미팅을 늘리려면 창업자와 투자자 모두 자신을 어필할 ‘온라인 프로필’에 더 신경을 써야 하는 시대가 됐다. 지역과 국경을 초월한 무한 경쟁 체제가 시작됐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창업자든 투자자든 웹사이트는 기본이고 소셜미디어, 블로그, 기고, 발표 등을 통해 본인의 차별화된 브랜드를 만들어야 한다.

실리콘밸리의 가장 존경받는 벤처투자사 세쿼이아캐피털은 매년 웹사이트 내용을 바꾼다. 지금은 그동안 성공적으로 투자한 업체의 창업자와 담당 파트너 간 의 스토리를 담고 있다. 세쿼이아캐피털에서 초기 투자를 받아 그 성공 스토리에 이름을 올리는 것이 많은 창업자의 꿈이 되었다. 또 다른 유명 투자사인 앤드리슨 호로위츠는 설립 초기부터 리서치 전문가를 고용해 업계 최고 수준의 콘텐츠를 제공한다. 다양한 분야의 시장 보고서, 기고, 비디오, 팟캐스트, 뉴스레터 등 열람할 수 있다. 최근 투자한 오디오 기반의 소셜미디어 업체 ‘클럽하우스’에 직접 방을 열어 창업자들과 교류하기도 한다.

지난 3월 쿠팡의 미국 나스닥 상장은 한국 스타트업의 경쟁력을 보여 준 쾌거다. 1998년 박세리 선수가 LPGA 메이저 대회에서 처음 우승한 뒤 많은 선수가 뒤따라 진출해 세계 여자 골프를 점령한 것처럼, 스타트업 업계의 ‘박세리 모먼트’라고 할 수 있다. 앞으로도 수많은 한국 스타트업이 쿠팡의 전례를 따라 미국 상장을 추진하게 될 것이다.

쿠팡 투자사 중 국내 투자사는 거의 없다. 대부분 해외 투자사다. 온라인 미팅으로 장벽이 낮아진 상황에서 해외 유명 투자사들은 온라인 콘텐츠를 통해 유망 스타트업과 접점을 늘리며 브랜드를 더욱 강화하고 있다. 국내 투자사들의 설 자리가 점점 더 좁아지고 있다. 분발이 필요한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