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사 김정희의 편액 글씨, 경경위사(經經緯史). 간송미술관 소장.

추사 김정희의 글씨 중에 ‘경경위사(經經緯史)’가 있다. 경(經)은 날줄, 위(緯)는 씨줄이니, 날줄을 세로로 걸고 씨줄이 가로로 오가며 한 필의 베를 짠다. 그러니까 경경위사란 말은 경경(經經), 즉 경전(經傳)을 날줄로 걸고, 위사(緯史) 곧 역사책을 씨줄로 매긴다는 뜻이다. 경도와 위도를 알아야 한 지점을 정확히 표시할 수가 있듯, 경전 공부로 중심축을 걸고 나서 여기에 역사 공부를 얹어야 바른 판단을 세워 중심을 잡을 수 있다.

이 말은 예전에 독서의 차례를 말할 때 늘 하던 말이다. 임헌회(任憲晦, 1811~1876)는 “배우는 사람은 마땅히 경전을 먼저 읽고 역사책은 나중에 해야 한다. 근세에 ‘소미통감(少微通鑑)’을 가지고 처음 배우는 자에게 가르치는 것은 절대로 성현의 뜻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가 말한 ‘선경후사(先經後史)’는 경경위사와 뜻이 같다.

왜 그랬을까? 조병덕(趙秉悳, 1800~1870)의 설명은 이렇다. “정자(程子)는 남을 가르칠 때, 먼저 ‘논어’와 ‘맹자’를 읽고, 그 다음에 여러 경전을 읽은 뒤에야 역사책을 보게 하였으니, 그 차례가 어지러워서는 안 된다. 경경위사와 선경후사의 뜻은 공부하는 첫 단계에서 마땅히 조심해야만 한다.” 오희상(吳熙常, 1763~1833)도 “경전은 이치이고 역사는 사실이어서, 경전은 순수하고 역사는 뒤섞여 있다. 그래서 옛사람의 독서법은 반드시 경전을 먼저하고 역사를 뒤로 하였다(經理而史事, 經純而史雜, 故古人讀書之法, 必先經後史).”

역사는 실제 일어난 사건에 바탕을 두므로 선악과 시비가 구분 없이 섞여 있다. 불의가 정의를 이기고, 권모술수가 진실에 앞서 통한다. 그러니 공부하는 사람이 중심의 줏대를 세우지 않은 채 역사책을 먼저 읽으면,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되고, 무슨 수를 써도 이기면 그만이라는 식의 생각을 가질 수 있다.

공부는 판단의 기준을 세우기 위함인데, 방편의 효율과 수월성만 따지면 못 하는 짓이 없게 되고 안 하는 일이 없게 된다. 공부뿐 아니라 모든 일은 순서를 바로 세우는 것이 먼저다. 순서를 헝클면 열심히 해서 더 나쁜 결과를 얻고 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