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크리스천 사이언스 모니터의 통신원인 앤 하임스는 젊은 시절(in her early days) 평화봉사단으로 한국을 다녀갔다. 그녀가 ‘혹독했던 겨울의 따스했던 기억(A warm memory of a bitter winter)’이라는 제목의 글을 올렸다. 54년 전 춘천의 겨울 풍광이다.

“1968년 당시 파란 눈의 금발(fair hair) 여자는 길거리의 호기심 대상이었다. 하물며 대중목욕탕에서 발가벗고 돌아다닌(go about naked in the public bathhouse) 나는 그들에게 충격 그 자체였다.

허름한 단층집(shabby one-level)에 방 한 칸 빌렸다. 화장실이 바깥에 있는 L자형에 전기는 들어오지 않는(L-shaped structure with an outhouse and no electricity) 집이었다. 마당에 있는 펌프는 꽁꽁 얼어(be frozen solid) 양동이의 얼음을 쪼아 써야 했고, 세탁물은 빨랫줄 위에서 기이한 모양으로 얼어붙었다(freeze into weird shapes on the clothesline).

매섭기 그지없었다(be too harsh for words). 내가 영어를 가르친 남자중학교 교실은 여기저기 창문이 깨져 있고, 배불뚝이 석탄 난로(potbellied coal stove) 하나만 놓여 있었다. 눈이 내리면 교실로 날아들어(swirl its way into the classroom) 낡은 나무책상 위에 쌓이곤 했다. 학생들은 겨우 여밀 정도의 단추만 달린 누더기 같은 교복을 입고 덜덜 떨었다(shiver in tattered uniforms). 대다수가 양말 신을 형편도 되지 않았다(cannot afford socks).

내가 따스함을 느낄 수 있었던 유일한 곳은 두꺼운 이불 속에 겹겹이 옷을 껴입고(dress in layers) 잠을 청하던 작은 방 바닥뿐이었다. 머리 위로는 쥐들이 뛰어다녔고(scurry overhead), 이따금 천장 틈새로 뾰족한 코를 들이밀어(poke pointed nose) 새 방 주인 냄새를 맡기도 했다.

어느 날, 공중목욕탕이라는 곳이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콘크리트 탕에 불빛은 어둑했고(be dimly lit) 습기로 차 있었다(be heavy with humidity). 모두 벌거벗은 채 젖은 바닥에 쪼그리고 앉아 때를 밀거나(scrub off dirt and dead skin cell) 바가지로 물을 끼얹고 있었다. 서로 등을 밀어주는(wash each other’s backs) 모습은 놀랍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했다(be surprising and novel).

처음엔 눈이 휘둥그레졌던(be pop-eyed) 그녀들이 하나둘 따스한 미소를 보내주기(give me a warm glowing smile) 시작했다. 그들이 몸을 정갈하게 하는 행위는 신성한 의식(sacred ritual) 같았다. 나는 거기에서 마치 세례라도 받은 양(like being baptized) 숨 막힐 듯 했던 겨울날에서 구원을 받는 기분을 느꼈다(feel rescued from oppressive winter days).

추위로 거의 감각을 잃은(be nearly numb with cold) 60명의 학생들과 함께 몸을 덥히려고 손뼉을 치고 팔 벌려 뛰기를 하며(clap and do jumping jacks) 영어 문장을 외웠던 그 혹독했던 겨울, 대중목욕탕에서 “곧 봄이 올 것”이라며 용기를 얻어 나오곤 했던 그 따스한 기억이 지금도 삼삼하다.”

[영문 참고자료 사이트]

https://www.csmonitor.com/The-Culture/The-Home-Forum/2022/0124/A-warm-memory-of-a-bitter-wint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