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님들 안녕하세요.” 지난 12월, 아빠 세 명이 모인 단톡방이 만들어졌다. 며칠 뒤 셋은 용산의 어느 카페에서 만나 늦은 아침을 먹으며 수다를 떨었다. 대화 주제는 부동산이나 주식 투자도 아닌 육아. 대화를 나누면서 직감했다. ‘지금이 제일 힘든 줄 알았는데 아이가 크면 클수록 또 다른 어려움이 있겠구나.’

다시 며칠 뒤, 단톡방을 만든 아빠가 각자의 육아 경험을 뉴스레터로 써보자고 제안했다. “글로 써놓지 않으면 기억이 안 나더라고요. 열 살인 첫째가 한두 살 때 어땠는지 벌써 희미해졌어요.” 자녀가 둘인 다른 아빠도 찬성했다. 돌이켜보면 내 딸이 태어난 날, 당시 상황을 거의 분 단위로 촘촘히 기록했던 기억이 있다. 일종의 난중일기랄까. 그 뒤로는 하루하루 살기도 벅차 일기는커녕 한두 줄도 못 적은 날이 훨씬 많았다.

휴대폰 사진첩은 아이 사진으로 가득 차 있지만, 정작 사진 속 기억은 휘발하는 기분이었다. 그렇게 2월 초부터 지인들과 육아에 관한 뉴스레터 ‘썬데이 파더스 클럽’을 시작했다. 두 명을 더 모아 총 다섯 아빠가 번갈아가며 쓴다. 몇 가지 걱정도 앞섰다. 뉴스레터가 이미 포화 상태인 점. 더욱이 여성들은 매일 묵묵히 육아하고 있는데 남성이 유별난 것처럼 글을 쓰는 게 괜찮을지 확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혹여나 우리가 쓴 글에 실수나 편견이 담길 위험이 있으니, 각자 배우자들이 최종 감수를 봐주기로 했다.

뉴스레터를 시작해 보니 다행히 독자 반응은 나쁘지 않았다. 결혼 여부나 자녀 유무와 상관없이 더 넓은 독자층이 읽는다는 사실도 인상적이었다. 비혼이고 자녀도 없지만 생생한 이야기만으로도 공감이 간다는 의견이 있었고, 갓 초보 팀장이 된 어느 싱글은 경영과 육아에서 묘한 동질감을 느낀다고 전했다. 엄마이자 논픽션 작가인 미야모토 에리코는 ‘저희는 아이를 이렇게 키웁니다’를 통해 40대 이하 남성 경영자 10인을 인터뷰했다. 그중 이리야마 아키에 경영학자는 경영과 육아의 차이를 묻는 질문에 이렇게 답한다. “육아는 ‘무엇을 성공 기준으로 삼을 것인가’ 하는 문제에 정답이 없습니다. 예를 들어 자녀가 유명 대학에 들어가 상장 기업에 입사하여 결혼했다고 해도 본인이 행복한 인생을 보냈는지 여부는 죽는 순간까지 알 수 없습니다. 그 순간까지 부모가 함께 있을 확률도 매우 낮지요. 그럼에도 ‘부모로서 아이들에게 무엇을 줄 것인가’라는 정답이 없는 질문에 영원히 직면하는 것이 육아일 것입니다.”

세상은 빠르게 변하는데 내가 참고할 만한 육아 모델은 없는 시대다. 한편 모델의 부재는 동시대 양육자 각자의 경험과 지혜를 모아 시대상에 맞는 모델을 새로 구축할 기회를 뜻하기도 한다. 정신건강의학과 의사이자 아동 전문가로 유명한 오은영처럼 공신력 있는 전문가의 조언뿐 아니라 나와 비슷한 사회 집단에 있는 사람들의 논의와 시행착오가 중요한 이유다. 정답이 없는 질문일수록 집단 지성도 필요하다. 일례로 회사 메신저에는 ‘어버이연합’이라는 채널이 있다. 그 채널에서는 언제 어린이집을 보내는 게 적당한지, 이유식은 무얼 먹이는 게 나을지 등 유용한 조언이 오고 가기도 한다.” 육아는 매일매일 내가 별로인 사람인 걸 확인하게 한다. 보고 싶지 않은 내 끝을 내가 본다.” 방송인이자 두 아이의 엄마 김나영이 최근 소셜미디어에 남긴 글이 많은 공감을 받은 이유는, 그 고민의 보편성 때문이 아닐까. 세상 모든 부모와 양육자의 건투를 빈다. 우리는 분명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