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은 건조했다. 그저 건조한 것이 아니라 역대 기록을 갈아치울 만큼 건조했다. 지난해 12월부터 올해 2월까지 총강수량과 강수 일수는 과거 50년간 가장 적었다. 1~2월 강수량은 평년의 10%도 되지 않았다. 마른 장마에 이어 겨울 가뭄이 찾아온 것이다.

원인이 어떻든 겨울 가뭄은 봄철 농작물과 산림의 생장에 치명적이다. 파종이 늦어지거나 개화 시기가 바뀌는 정도가 아니다. 국가적 재난이 발생할 수도 있다. 산불이 대표적이다.

3월 4일, 코로나로 닫혔던 교정이 열리고 1년여 만의 첫 대면 수업. 학생들과 날씨 이야기를 하다 올봄은 산불이 걱정이라고 말했다. 정확히는 올해 산불이 발생한다면 그건 역대 최악일 수 있다고 말했다.

산불은 기상·기후 상태뿐만 아니라 숲의 지형과 숲의 형태에 큰 영향을 받는다. 그래서 겨울 가뭄만으로 봄철 산불을 예단할 수는 없다. 그러나 불길한 예상은 적중하고 말았다. 그날 저녁, 강원도 산불 소식이 전해졌다. 울진이었다. 거의 동시에 강릉에서도 산불이 발생했다. 울진 산불은 순식간에 삼척으로 번졌고, 강릉 산불은 동해로 번져 나갔다. 고작 수일 만에 울진에서 강릉까지 강원도 동해안 일대가 산불에 휩싸였다.

산불이 걷잡을 수 없이 퍼진 것은 순전히 바람 때문이었다. 3월 4일과 5일, 이틀간 동해안 지역에 강풍 특보가 내려졌다. 순간적으로 초속 20m에 이르는 ‘양간지풍’이 불면서 삽시간에 산불이 번진 것이다. ‘양간지풍’ 혹은 ‘양강지풍’은 봄철 양양과 간성(현재 고성) 혹은 양양과 강릉 사이에 부는 강한 바람을 일컫는다. 봄철 강원도 동해안을 따라 종종 발생한다. 특히 이 지역에 대형 산불이 발생할 때면 어김없이 등장한다.

메마른 숲에 강풍이 겹치면서 울진-삼척-동해-강릉 산불은 역대 최악 산불로 기록되었다. 9일 만에 가까스로 주불이 진화됐지만, 이미 서울 면적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지역이 화마에 휩싸인 후였다. 화재로 소실된 나무는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금강송 군락지를 지켜낸 것이다. 밤낮없이 산불과 싸운 사람들의 노력 덕분이었다.

지난여름만 해도 산불은 남의 나라 이야기였다. 그리스에서 발생한 대규모 산불은 서울 면적의 1.7배에 이르는 관광지를 태워 버렸다. 대형 산불은 터키에서도 발생했다. 세계에서 가장 추운 곳으로 알려진 시베리아에서도 섭씨 30도가 넘는 폭염으로 대규모 산불이 발생했다. 거의 매년 발생하는 캘리포니아 산불은 또 큰 피해를 끼쳤다. 그리고 3월, 산불의 주인공은 우리나라가 됐다.

최근 빈번해진 대형 산불은 분명 기후변화와 연관되어 있다. 무엇보다 양방향으로 연관되어 있다. 관계를 단순화하면 다음과 같다. 이산화탄소 증가로 폭염이 빈번해지고 있다. 폭염은 숲의 건조를 동반하기 때문에 산불 위험성을 높인다. 만약 산불이 발생한다면 산림은 막대한 양의 이산화탄소를 대기 중으로 방출하게 된다. 이는 곧 기후변화를 가속하고 산불 발생 가능성을 높인다. 실제 산불에 따른 이산화탄소 배출은 무시할 수 없을 만큼 크다. 지난해 세계 곳곳에서 발생한 산불은 무려 64억톤에 이르는 이산화탄소를 대기 중에 배출했다. 2020년 한 해 동안 유럽연합 전역에서 화석연료 연소로 배출된 이산화탄소의 2.5배에 이르는 양이다. 물론 변수도 많다. 하지만 전반적으로 악순환임은 분명하다.

산림은 보통 이산화탄소를 순흡수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최근에는 순배출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하고 있다. 일례로 미국의 산림은 이산화탄소 순흡수원이었다. 그러나 근래 지속된 대형 산불과 병해충으로 산림이 소실되면서, 콜로라도와 와이오밍에 걸쳐 일부 지역 산림이 이산화탄소 순배출원으로 변질했다. 안타깝게도 이런 추세는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산림의 가치를 단순히 몇몇 숫자로 정량화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특히 탄소 중립 시대에 산림의 가치는 무궁무진하다. 파리기후변화협정은 “산림을 포함한 온실가스 흡수원 및 저장고를 적절히 보존하고 증진하는 조치를 해야 한다”고 명문화했으며, 지난해 글래스고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 회의에서는 141국 정상들이 “2030년까지 산림 손실을 막고 복원하고자 노력”하는 데 합의했다.

우리나라 산불도 그 규모가 점점 커지고 있다. 산림청 통계대로라면 역대 재난성 산불은 모두 1996년 이후 발생했다. 우리나라 산림의 이산화탄소 흡수량은 국가 전체 배출량의 6% 정도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이 흡수량이 최근 뚜렷하게 감소하고 있다. 기후변화로 산불, 산사태, 병충해 등이 대형화하고 빈번해진 탓이다. 산불에 따른 이산화탄소 배출량만 하더라도, 최근 10년간 배출량은 과거 10년에 비해 약 4%정도 증가했다. 문제는 이것이 현재 진행형이라는 점이다. 올해 최악의 산불을 겪었지만 앞으로 더욱 심각한 산불이 발생한 가능성은 여전히 높다.

우리나라 산림은 일제강점기와 6·25전쟁을 거치며 회복이 불가능할 정도로 황폐해졌다. 그러나 1970~1980년대 대규모 조림 사업과 보호 정책을 펼치면서 극적으로 회복되어, 현재는 전 국토의 63%를 차지하게 되었다. 파괴된 산림을 복원하는 일은 너무나 당연하다. 인공 조림이 필요하다면, 이제는 기후 위기에 대응할 수 있는 조림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해당 지역의 생태를 고려하면서도 이산화탄소를 효과적으로 흡수할 수 있는 나무를 적극 고려해야 할 것이다.

대한민국 탄소 중립은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획기적으로 줄이는 것과 동시에 흡수량을 늘리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여기서 흡수량의 90% 이상이 산림 몫이다. 안타깝게도 작금의 기후 위기가 지속된다면 우리나라 산림의 이산화탄소 흡수량은 오히려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지금이라도 적극적인 산림 보존과 복원이 필요한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