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저렇게 언어를 다루는 일로 20년째 밥벌이를 하고 있다. 20년 동안 느낀 점 하나가, 언어는 정말 강력한 무기라는 거다. 언어는 때로 면도날처럼 날카롭게 사람 마음을 베는데, 그 상처는 매우 오래간다. 비아냥거림이나 짧고 강력한 조롱, 적시에 터지는 사악한 아포리즘이 여기에 해당한다 하겠다. 이 기술을 갈고 닦는 이도 있다.

언어는 몽둥이처럼 투박한 둔기가 되기도 한다. 욕설이 대부분 여기에 속한다. 특별한 기술 없어도 쉽게 사용할 수 있으며, 상대를 불쾌하게 만들고자 하는 의도는 매번 거의 틀림없이 달성한다. 그러나 그 사용자가 세련된 언어 전문가가 아님도 드러난다. 파괴력도 제한적이다. 상대방도 그 정도 둔기는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 휘두를 수 있다.

진짜 무서운 언어 무기는 올가미와 같다. 상대의 목을 졸라 발언권을 빼앗아 버린다. 아니, 독가스와 같다고 해야 할까. 순식간에 퍼져서 여러 사람의 생각을 한꺼번에 마비시킨다. 프레임을 만드는 말들이다. 정치권이나 홍보 업계에서만 사용되는 대단한 기법이 아니다. 잘 쓰는 사람은 일상생활에서도 얼마든지 이런 언어로 목적을 달성한다. 성공한 인물을 공격할 때 앞에서 쌍욕을 퍼붓거나 꼬투리를 잡아 비꼬는 것은 하급 기술이다. 그런 말을 하는 사람의 품위는 깎이고, 표적은 더 유명해진다.

정말 고수는 “당신, 권력이 됐다”고 한다. 성공하면 영향력이 생기고, 영향력은 일종의 권력이니 맞는 얘기다. 그런데 어떤 사람을 권력이라고 부르면 음험한 이미지가 따라붙는다. 상대는 자신이 권력이 아니라고 반박할 수가 없다. 그것만으로도 그를 충분히 난처한 상황에 빠뜨릴 수 있다. ‘권력’이라는 곤란한 비판을 받은 상대가 할 수 있는 일은 자신이 나쁜 권력이 아니라 좋은 권력이라고 항변하는 정도다. 그러면 이제 그를 내 뜻대로 움직이기 한결 쉬워진다. ‘권력’이라는 꼬리표가 일종의 샅바가 되는 셈이다.

‘공감’이라든가 ‘소통’ 같은 단어는 특히 상대적으로 약자 처지에 있는 사람이 사용할 때 위력이 세다. 자신이 원하는 대로 행동할 때까지 상대편을 계속 ‘공감 능력이 없다’고, ‘소통하지 않는다’고 몰아세울 수 있다. 반면 한 세대 전까지 상대적으로 강자 처지에 있는 이들은 ‘우리’라든가 ‘단결’ 같은 단어로 약자의 입을 막곤 했다.

이런 단어는 현재 벌어지고 있는 일을 한 단계 더 추상적인 차원에서 정리한다. 그런 시점 전환을 통해 때로 갈등의 본질을 더욱 명쾌하게 파악하고, 새로운 방법으로 문제에 접근할 실마리를 얻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런 추상화 과정은 특정 세력에게 고정관념이 형성한 이미지를 덧씌우고, 형세를 미묘하게 바꾸기도 한다.

최근 몇 년 새 의미가 확장되면서 크게 유행한 ‘꼰대’라는 말은 어떨까. 한국은 유교 문화와 권위주의 분위기가 여전히 강한 나라이고, 실력도 논리도 예의도 없이 자기 의견을 강요하는 기성세대도 많다. 그런 이들에게 맞서려는 젊은 세대에게 꼰대라는 단어는 좋은 무기가 된다. 어지간한 중장년은 꼰대라는 비판을 마음 깊이 두려워한다. 하지만 이 말 역시 오남용된다. 상대가 나보다 나이가 많거나 직급이 위라면, 그리고 그의 의견이 나와 다르다면, 너무나 쉽게 휘두를 수 있는 무기다.

모든 충고와 조언, 지적, 비판에 대해 “꼰대질하지 마세요”라고 나이 든 상대를 몰아세울 수 있다. “싸가지 없다”는 말이 젊은이들의 발언권을 뺏고, 도전 정신과 창의성을 막는 것과 똑같다. 역설적으로 생각이 깊은 이들일수록 ‘꼰대’나 ‘싸가지’ 같은 공격을 두려워해 말을 삼가고, 아집으로 똘똘 뭉친 어리석은 이들은 그런 자기 검열에 관심이 없을 것 같다. 밭에 있어야 할 좋은 곤충은 말려 죽이고 나쁜 벌레는 점점 더 독하게 만드는, 부작용 많은 살충제 같은 말들 아닐까.

정중한 대화와 토론을 북돋는 거름 같은 언어는 없을까. 젊은 세대에게 이런저런 직장 생활의 팁을 전하는 인터넷 사이트의 유료 콘텐츠를 보고 별 내용이 없음에 놀란 적이 있다. 예전 같았으면 직장 상사와 대화하면서 자연히 듣게 될 당연한 이야기를 돈을 내고 사서 듣는 청년이 많다는 사실이 가장 놀라웠다. 이래저래 지혜의 총량도, 지혜를 말하는 사람도 줄어드는 시대인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