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인수가 1939년에 노래한 ‘얼러 본 타관 여자’를 듣는다. 전주(前奏)에서 익숙한 선율이 감지된다. 1933년 헝가리의 레죄 세레쉬(Rezső Seress)가 전쟁으로 인한 절망의 심정을 담아서 작곡한 ‘글루미 선데이(원제는 Szomorú vasárnap)’다. 이후 라슬로 야브르(László Jávor)가 연인의 죽음에 충격을 받아 스스로 생을 포기하려는 내용의 노랫말을 붙여서 1935년 팔 칼마르(Pál Kalmár)가 헝가리어로 처음 노래하였다. 미국에까지 알려져 여러 가수들이 노래를 불렀는데, 1941년에 발매된 빌리 홀리데이(Billie Holiday)의 노래가 특히 유명하다.

노래를 듣고 극단적 선택을 한 사람들이 생겼다 해서 일명 ‘헝가리 자살곡’이라 불린 이 노래는 1930년대에 이미 우리나라에도 전해졌다. 이야기 음반 ‘서러운 일요일’에도 삽입된 윤건영의 ‘서러운 일요일’(1937년)이 대표적이다. 음원은 없으나 ‘세레스’라 표기된 작곡자의 정보와 노랫말을 통해 이 노래의 원곡이 ‘글루미 선데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주인공 희영이 죽은 연인 영순을 그리워하는 내용의 노랫말에는 “글루미 선데이”라는 표현이 매절 마지막에 반복적으로 등장해서 노래의 연원을 가늠하게 한다.

또한 탁성록이 1936년에 발표한 ‘어두운 세상’(팽환주 작사)은 제목이 암시하듯이, ‘글루미 선데이’와 선율이 동일하다. “꿈같이 그리던 그 얼굴 더듬고 봄 하루 외로이 지내는 내 설움. 언제나 또다시 네 이름 새겨서 다 묵은 추억에 이 밤을 새울까?”라는 노랫말은 떠나간 연인을 그리워하는 심정을 드러내고 있어서 ‘글루미 선데이’의 영향권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10여 편의 대중가요를 작곡하기도 한 탁성록이 직접 노래한 것은 ‘어두운 세상’이 유일한 듯하다.

광복 이후 그는 또 다른 의미에서 어두운 세상에 스스로를 가두어 버렸다. 마약 중독자로서 피폐한 삶을 산 것은 차치하더라도, 제주도 ‘4·3 사건’ 당시 진압대의 핵심 일원으로 선량한 사람들을 살해하는 데 앞장선 것은 도저히 간과할 수 없는 크나큰 과오이다. ‘개관사정(蓋棺事定)’이라고 하듯이, 사람에 대한 평가는 그가 죽은 후에야 비로소 제대로 이루어진다. 시작만큼 끝이 중요하다고 하는 이유다. 역사는 되풀이되면서 우리에게 교훈을 주지만, 어리석게도 인간은 그것을 망각한 채 또다시 잘못을 범하곤 한다. 그렇게 여전히 어두운 세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