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새도 날아와 우짖지 않고,

구름도 떠가곤 오지 않는다.

인적 끊인 곳, 홀로 앉은

가을 산의 어스름. (중략)

황혼과 함께

이어 별과 밤은 오리니,

생은 오직 갈수록 쓸쓸하고,

사랑은 한갓 괴로울 뿐.

그대 위하여 나는 이제도 이

긴 밤과 슬픔을 갖거니와,

이밤을 그대는 나도 모르는

어느 마을에서 쉬느뇨.

-박두진(1916~1998)

(원시와 다르게 행을 배열함)

청록파의 한 분이었던 박두진 선생이 쓴 10연의 시인데, 지면이 모자라 행을 붙여 배열했다. ’도봉’을 처음 읽었을 때 내 관심을 끈 것은 자연 묘사가 두드러지는 앞이 아니라, 생의 쓸쓸함을 토로하는 뒤의 3연이었다. “생은 오직 갈수록 쓸쓸하고”에 감전된 나는 시인이 노년에, 오십대가 지나 쓴 시라고 예단했다. 생의 쓸쓸함을 이렇게 짧고 굵게 관통하려면 나이가 들 만큼 들어야 하지 않나.

작품 연대를 확인해보고 나는 놀랐다. 1944년, 해방 직전에 30세도 안 된 시인이 쓴 시라니. 식민지 청년들은 일찍 늙었나. 일제강점기를 의식하고 시를 다시 읽으니 심상치 않은 기운이 감지된다. ‘산새도 우짖지 않고 구름도 떠가곤 오지 않는’ 이상한 산에 갇힌 청년, 그 답답한 침묵과 공허가 가엽다. 마지막 행에 나오는 ‘그대’만이 그를 구원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