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9년 미국 캘리포니아의 유레카(Eureka) 마을. 자기 집을 수리하려던 스티븐 고든(Stephen Gordon)은 빅토리아 스타일의 오래된 집에 어울리는 철물과 조명기구를 구할 수 없었다. 화가 난 그는 ‘복원 철물(Restoration Hardware)’이라는 이름으로 직접 가게를 차려 빈티지 철물들을 팔기 시작했다. 곧바로 비슷한 요구가 있었던 주변의 친구들과 이웃에게 큰 인기를 얻었다.

/박진배 제공 시카고의 RH 매장. 오래된 고등학교 건물을 리모델링하여 공간 전체를 매장으로 활용하고 있다.

이후 전국으로 매장을 넓혀나가면서 직물, 조명기구, 가구, 책, 장난감 등 홈 데코에 필요한 다양한 물품을 구비했다. 단지 구색만 갖추어 놓은 게 아니라 향수를 불러일으킬 만한 빈티지 용품, 그리고 직접 만들고 수리하는 수작업 관련 물품들을 골고루 갖추어 하나의 라이프스타일을 제시하고자 했다.

/박진배 제공 시카고의 RH 매장. 가구와 생활 용품의 스타일을 굳이 분류하자면 ‘프랑스 시골풍’, 또는 ‘캘리포니아 해변 스타일’로 분류할 수 있겠지만, 그보다는 ‘유행을 타지 않는...’이 더 적합한 표현일 것이다.

판매하는 가구와 생활 용품의 스타일을 굳이 분류하자면 ‘프랑스 시골풍’, 또는 ‘캘리포니아 해변 스타일’로 분류할 수 있겠지만, 그보다는 ‘유행을 타지 않는…’이 더 적합한 표현일 것이다. 이런 지속성 덕분에 수십 년간 폭넓은 고객층을 확보할 수 있었다. 십여 년 전 ‘RH’로 이름을 바꾼 후부터 매장의 종합적인 업그레이드를 감행했다.

/박진배 제공 시카고의 RH 매장 레스토랑. 레스토랑까지 구비해서 힘찬 공간력으로 집객을 유도하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변화가 부동산의 구입이다. 시카고에는 오래된 고등학교 건물, 뉴욕은 미트패킹 디스트릭트의 창고 건물, 보스톤의 경우 1864년 지어져 현재 문화재로 지정된 자연사박물관 건물을 구입해서 전체를 매장으로 리모델링했다. 자사에서 판매하는 가구와 물건들로 다양한 형태의 공간을 꾸미고 레스토랑까지 구비해 종합적인 공간체험을 제공하는 것이다. 요즈음 물리적인 장소에서 ‘공간력’으로 집객을 유도하는 마케팅의 원조인 셈이다.

/박진배 제공 뉴욕 RH 매장. 미트패킹 디스트릭트의 창고 건물을 개조하여 자사에서 판매하는 가구와 물건들로 다양한 형태의 공간을 꾸며놓았다.

RH의 상호는 ‘철물’을 포함하고 있지만 매장에는 그 이상의 문화가 존재한다. 그래서 많은 고객이 한구석에서 꼭 원했던 상품을 발견한다. 가구나 철물은 물론, 조명기구나 향수, 요리책을 망라한다. 이곳에는 마치 개인과 함께 성장하는 유기체적 느낌으로 현대인이 동경하는 욕구를 채워주는 마법이 있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