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내 머리에 똥 쌌어? 호젓한 숲속에서 동화 제목처럼 당했다. 비바람이 거칠게 몰아친 뒤끝. 잔가지며 이파리가 오솔길에 널렸다. 바싹 말라 부러진 나무토막도 수월찮은데. 굵기가 종아리만 한 걸 툭 차니 맥없이 동강 난다. 이런 거 떨어지면 놀라겠는걸. 고개 쳐드는 순간 얼굴에 진짜 날아드는 게 있었으니. 새똥이 몸에 옷에 질펀하게 튀었다. 아내 따라 멋쩍게 키득거릴밖에.

이런 판에 ‘대체 어느 놈’이 아니라 ‘어느 분이’ 해도 우스꽝스럽겠지(그러고 보니 똥도 한자어로 ‘분·糞’일세). 아무튼 이 의존명사 ‘분’보다 쓸데없이 잘 튀어나오는 ‘분’이 있다.

‘비슷한 치료를 받는 환자분 사례를 보자.’ ‘환자분’의 ‘분’은 사람을 나타내는 일부 명사에 붙어 그를 높여주는 접미사. 한데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하는 보도문에선 특별한 명분이 없으면 특정인을 높이지 않음이 옳다. 높일 대상이 독자(시청자)일 수도 있으니까. 해서 ‘분’을 함부로 쓰면 거북하다. 국가 대표 축구팀이 아무리 잘한들 “모든 선수분이 잘 싸워서”라고, 여럿이 달려들어 뒤집힌 차 바로 세웠다고 ‘훌륭한 시민분들’이라고 하지 않듯.

방송 인터뷰에서 산불 겪은 이한테 묻는다. “외지에서 남편분께 전화했더니 불이 났다 하셨다고요?” 말 주고받을 때야 존대하고 배우자도 높이는 게 상식인데, 전화한 주체가 아내라서 ‘께’부터 불필요하고 ‘남편분’은 영 어색하다. 남의 남편 높이는 말 ‘부군(夫君)’이 따로 있으니까. 아내도 높이려거든 ‘아내분’이 아니라 ‘부인(夫人)’이라 하면 된다.

남의 어린 자식 높여 부른답시고 ‘아들분, 딸분’ 할 텐가. 굳이 하려거든 ‘아드님, 따님’이 있건만. ‘손님분’ ‘어르신분’은 어떤가. ‘손(객·客)’을 이미 높인 말이 ‘손님’이요, 남의 부모 높인 말이 ‘어르신’인데 ‘분’을 또 붙인다. 이러다 ‘피의자분’ ‘범인분’까지? 과공비례(過恭非禮·지나친 예의는 예의가 아니다)라는 오랜 가르침이 더 울리는 오늘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