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미스트지가 꼽은 올해 가장 중요한 선거는 일단 승부를 가리지 못했다. 튀르키예 대선 이야기다. 5월 28일 결선투표로 최종 당선자를 뽑는다. 주요 외신들은 연일 이 선거 기사를 앞다투어 내놓고 있다. 특정 국가 선거에 세계는 왜 이토록 관심을 가지는 것일까? 세 차원에서 의미를 살펴볼 수 있다.

먼저 튀르키예의 국가 정체성을 가르는 선거다. 현직 대통령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은 공화국 수립 백주년인 올해를 ‘새로운 터키의 세기’로 명명했다. 이슬람주의와 팽창주의를 내세우며 강력한 튀르키예 구현을 선언했다. 혹자는 이를 ‘신오토만주의’로 슬쩍 규정한다. 에르도안이 백년 전 제국의 현대적 부활을 꿈꾸며 튀르키예의 지역 패권을 추구한다는 주장이다. 반면 야권 연합 후보 케말 클르츠다로을루는 ‘봄은 다시 온다’는 구호를 내세웠다. 세속주의와 국제연대에 기반을 두는 의회주의 공화정 전통, 즉 ‘케말주의’의 회복을 강조한다. 요약하면, 이번 선거는 이슬람주의 대 세속주의, 권위주의 대 자유주의 사이에 선 튀르키예의 미래를 결정하는 계기다.

/그래픽=송윤혜

둘째, 지역 정세 즉 유럽과 중동 지역 정세에 변수가 되는 선거다. 특히 우크라이나 전쟁과 시리아 내전 판세와 연관된다. 튀르키예가 나토 회원국임에도 에르도안은 푸틴과 가깝다. 스웨덴의 나토 가입을 막으며 결이 다른 행보를 보였다. 그러면서도 우크라이나 입장을 고려하는 중립적 운신을 취하며 중재자 역할을 자임했다. 반면 클르츠다로을루는 친유럽, 친우크라이나 기조를 시사한다. 흑해 길목을 통제하고 있는 튀르키예 선거 결과가 우크라이나 전황을 좌우할 수 있는 이유다.

튀르키예는 시리아 북부에 군사 개입 중이다. 주된 이유는 양국 국경 안팎으로 산재하는 쿠르드족의 연대를 막기 위해서다. 에르도안은 쿠르드족의 정치적 움직임에 예민하다. 강경하게 대처해왔다. 반면 쿠르드족의 지지를 받는 클르츠다로을루는 시리아 개입을 축소할 가능성이 있다. 향후 시리아 정치 협상에 변수가 된다. 뿐만 아니라 리비아, 예멘 등 중동 각지에 개입해 온 튀르키예의 공세적 팽창주의 지속 여부도 이번 선거에 달려있다. 선거 결과가 중동 정세와 직결되는 이유다.

셋째, 글로벌 전략 경쟁 즉 강대국 세계 정치 차원에서의 함의다. 튀르키예가 러시아와 중국 등 소위 현상 변경 세력 국가들에 더 경도될지, 아니면 미국 주도의 자유주의 연대로 회귀할지를 가늠하는 선거이기 때문이다. 에르도안 본인은 특정 진영에 속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국익에 따라 얼마든지 친소(親疏)관계가 변할 수 있노라 호언한다. 실제로 중국의 위구르족 탄압에 대해 비판적이다. 하지만 전반적으로 에르도안은 중국과 전략적 협력을 원하고 있다. 일대일로(중국 주도의 신 실크로드 전략)의 주요 거점이자 핵심 파트너다. 재선에 성공하면 이 추세가 지속될 가능성이 크다. 반면 야권은 미국, 유럽을 중시하며 민주주의, 의회주의 회복을 내세우고 있다.

러시아는 에르도안의 재선을 바랄 것이다. 나토 안에서 튀르키예가 미국과 티격태격하는 그림을 원한다. 반면 미국은 야권 후보의 당선을 내심 원할 것이다. 지난 3월 중국의 중재로 사우디가 이란과 국교 정상화를 선언했을 때 미국은 충격을 받았다. 이 와중에 튀르키예가 반미 기조를 더 강화하면 미국의 지역 전략은 더욱 꼬인다. 인도·태평양전략으로 쿼드(미국·일본·호주·인도 4국 협의체)와 오커스(미국·영국·호주 안보동맹) 등을 통해 중국을 막고, 나토 동맹을 통해 우크라이나 전선을 지켜 러시아를 차단하려는 전략에 차질이 생긴다. 인도양과 태평양에서 중국을 압박해도 정작 중동과 유럽에서 본진이 뚫리는 형국이기 때문이다. 중심에 튀르키예가 있다. 따라서 이번 선거는 튀르키예 국내 정치만의 문제가 아니다. 국제 정치의 핵심 사안이다.

현재 에르도안이 다소 유리하다. 사전 여론조사와 달리 1차 투표에서 49.5%를 득표, 44.9%를 얻은 클르츠다로을루를 앞섰다. 경제난과 지진 대처 미흡으로 고전이 예상되었지만, 뜻밖의 결과였다. 결선투표에서 이 격차를 줄이기 위해 야권은 안간힘을 쓰고 있으나 녹록지 않다. 1차 투표에서 3위를 한 시난 오안 승리당 대표가 얻었던 5.2% 대부분을 야권이 고스란히 가져와야 하지만 쿠르드 관련 이견으로 인해 확실치 않다. 이번 선거는 에르도안을 주인공으로 세우고 그에 대한 찬반 구도로 전개되는 중이다. 온화하지만 다소 유약한 이미지의 클르츠다로을루는 아직 조연에 머물고 있다. 야권 후보가 바람을 일으키지 못하면 쉽지 않다. 물론 아직 시간은 있다. 530만 젊은 세대 유권자와 전체 유권자의 18%에 달하는 쿠르드 표의 결집 양상에 따라 결과가 뒤집힐 수도 있다. 이스탄불, 앙카라, 이즈미르 등 전통적 야권 지지 대도시 유권자들을 더 치열하게 파고들며 바람을 일으키면 분위기가 바뀔지 모른다. 하지만 일단 외신 다수의 분석은 에르도안의 재선 쪽에 무게를 싣고 있다.

지난 20년 에르도안 집권 기간 튀르키예는 분명히 달라졌다. 미국과 유럽에 편승하던 튀르키예가 진영을 넘나들며 강대국을 상대로 전략적 자율성을 구사하는 나라로 바뀌었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의 집권 전반기 10년과 후반기 10년은 완연히 다르다. 2012년까지 튀르키예는 상승기였다. 중동의 모델 국가였다. 전반기 10년간 7~8%에 육박하는 연평균 경제성장률을 보였다. 의회주의도 작동했다. 중견국 외교를 주창하며 소프트파워도 챙겼다. 한국도 믹타(MIKTA, 한국·멕시코·인도네시아·튀르키예·오스트레일리아 등 5국 협의체)를 통해 튀르키예와 함께 다자 협력체를 만들었다. 2011년 아랍의 봄 당시 중동국가에서 조사한 세계 지도자 선호 여론조사에서는 에르도안이 압도적 1위였다.

그러나 2013년부터 내리막이다. 권위주의로 치달았다. 경제는 흔들렸고 외교 노선도 바뀌었다. 중견국 외교 대신 이즈음부터 푸틴, 시진핑과 더 밀착했다. 호사가들은 에르도안, 푸틴, 시진핑을 묶어 각각 21세기판 술탄, 차르, 황제라 부르기도 한다. 모두 백 년 전 패망했던 대국의 후예들이다. 옛 향수를 내세우며 종신 집권을 꿈꾸는 듯하다. 역사는 과거로 회귀하고 스트롱맨의 시대는 더 깊어지는 징조다. 돌아오는 일요일(28일), 예상대로 에르도안이 다시 당선된다면 말이다. 과연 이변은 일어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