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당쟁사에서 노론당이었던 우암 송시열과 남인당이었던 미수 허목은 정적이자 라이벌이었다. 상대 당파 사람들을 서로 죽이던 관계였다. 그런데 아주 흥미로운 부분이 하나 발견된다. 중년에 송시열이 병에 걸렸을 때 반대 당파였던 미수 허목에게 자기 병을 고쳐 달라고 부탁을 했다는 점이다.

송시열의 병은 한의학에서 말하는 식적(食積)이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소화불량 증상이다. 음식을 먹으면 항상 속이 더부룩한 느낌이 든다. 식적은 음식물이 제대로 소화되지 못하고 체내에 머무르면서 나타나는 부작용이다. 독소, 노폐물, 가스가 찬다. 복부 비만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우암도 주변에 한의사를 여럿 알고 있었을 텐데도 불구하고 정적인 미수 허목에게 처방전을 부탁했다는 점이 인간관계의 다차원적 측면을 생각하게 만든다.

허목은 50세 이전까지는 벼슬도 하지 않았고 방외(方外·세속을 벗어난 곳)의 여러 도사들과도 교류가 깊었던 인물이다. 우암은 키 190㎝에 육박하는 거구의 UFC 선수 같은 몸집이었다. 이에 비해 미수의 초상화를 보면 호리호리하면서도 채식주의자 ‘비건’ 같은 인상을 풍긴다. 미수는 ‘방외지사(方外之士)’들과 교류하면서 영적인 파워도 있었던 모양이다. 삼척부사를 할 때 쓴 ‘동해척주비’가 해일을 막았다는 전설도 있고, 그의 지렁이체 글씨가 귀신을 쫒는 부적의 효과가 있다고 소문나기도 하였다. 의학에도 조예가 깊었던 모양이다.

십여 년 전 필자가 미수 종손에게 직접 들은 바에 의하면 미수가 우암에게 써준 처방전에는 비상(砒霜) 2냥이 들어있었다고 한다. 비상은 독극물이다. 그 처방전을 받으러 갔던 우암 아들이 ‘우리 아버지 죽이려고 비상을 2냥이나 넣었구나’ 생각하고 비상을 1냥으로 줄였다고 한다. 나중에 우암이 이걸 먹고 효과는 있었지만 완쾌는 안 되었다. 1냥으로 줄여서. 지금 생각하면 비상 1냥이라도 복용한 것이 대단하다. 정치적으로는 반대파였지만 인간적으로는 서로 일말의 신뢰가 깔려 있었던 것 같다.

강남의 한의사 L은 ‘식적’ 전문가이기도 해서 ‘비상을 과연 약재로 쓸 수 있느냐?’고 물어 보았다. “쓸 수 있다. 아마 비상을 그대로 쓰지는 않고 미수가 법제를 해서 주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법제(法製)는 화학 변화를 일으켜 독소를 제거하는 방법이다. 도가에서는 유황·수은·청산가리 같은 독극물을 땅에다 묻거나, 술의 주정, 짚풀에다 넣어서 법제하는 방법이 있다. 미수도 비상을 법제하는 비법을 이미 알고 있었다고 여겨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