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픽=양진경

평생 학습의 중요성을 주제로 지난 12일 열린 서울미래학습포럼에서 강연자로 참석하였다가 우리 사회의 모두가 생각해볼 만한 질문을 받았다. 청소년들은 좋은 학교에 들어갈 때까지만 열심히 공부하다가 이후로는 안락한 직업을 가지고 가능한 한 머리 고생, 몸 고생을 하지 않고 살고 싶다고 흔히들 생각해 평생 학습의 필요성을 받아들이기 어려울 듯한데, 이에 대해서 어떻게 조언하면 좋겠느냐는 것이 질문 요지였다. 어찌 보면 고도성장기 이후 한국 사회의 구성원들이 가지고 있는 광범위한 생각의 정곡을 찌른 것으로 보아도 그리 틀리지 않을 것이다. 더 빨리, 기왕이면 더 쉽게, 그리고 결과적으로 돈만 벌면 그만이라는 그 생각.

이 질문에 대한 내 대답은 간단하다. 정말 일찍이 공부를 그만두고 머리를 쉬게 내버려 두면 굳이 더 빨리 치매가 오는 노년을 맞이할 수도 있다. 근육을 쓰지 않고, 가만히 침대에 오랜 시간 누워 있으면 나중에는 걷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근력이 남지 않아서 근력을 회복할 기회마저 잃게 될 수 있다. 마찬가지로 머리가 고생하지 않고 쉬기만을 계속하면 ‘인지 예비능’이 줄어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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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를 이해하려면 인지 예비능이라는 개념을 먼저 짚고 넘어가야 한다. 이는 한마디로 ‘뇌 근력’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겨우겨우 걸을 근력만 남아있던 이는 폐렴으로 며칠만 침대에 앓아누워도 침대에서 일어날 수 없고, 근력 유지를 위한 최소한의 활동이 어려워지니 더욱더 기능이 나빠진다. 근육의 여유분이 적은 것이다. 하지만 근력의 여유분이 충분한 이는 침대에서 일어나 걷기 시작하면 걷는 활동 자체가 운동이 되어주므로 금세 회복되어 다시 일상적 신체 활동을 하게 된다. 그러니, 평소 만들어 둔 근력 여유분이 없으면 결국 침대에 누운 채 여생을 보내게 될 우려가 생긴다. 이때 걸을 수 있는 최소 근력과 현재 근력의 차이가 예비능이다. 여름철마다 주목받는 전력 예비량과도 비슷하다.

뇌도 마찬가지다. 평생 다양한 방법으로 몸과 머리를 사용하면서 인지 기능을 잘 관리하면 인지 예비능이 비교적 높다. 이렇게 여분이 많은 상황에서는 상당한 뇌의 구조적 고장이 누적되는 상황이 오더라도 인지 기능 자체는 일상생활을 수행하는 데 별다른 문제가 없어 치매를 앓지 않을 수 있다. 그래서 뇌의 통장 잔액이라고 생각해도 좋은데, 평생 이 통장 잔액을 풍부하게 만들어 놓으면 노화나 질병으로 안타깝게 뇌에 병적 문제가 생기는 상황이 벌어지더라도 삶의 질을 잘 지킬 수 있는 것이다.

많은 연구가 평생 뇌를 어떻게 사용해왔는지가 치매 발병이나 뇌의 구조적 변화에도 영향이 있다는 결과를 내놓았다. 지도와 주소를 외워야 하는 런던 택시 기사들의 해마가 버스 기사들의 해마와 비교할 때 커져 있었다는 결과를 밝힌 연구는 아주 유명하다. 복잡하고 어려운, 그래서 인지적으로 부담이 있는 직업을 가진 사람은 치매에 걸릴 가능성이 낮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미국 애리조나 대학의 로스 앤델(Ross Andel) 교수팀 연구에 따르면, 사람을 관리·상담하거나 고객을 접대하는 등 사람과 접촉하는 일, 정보를 수집, 분류, 분석하는 일 등 한마디로 머리가 고생하는 일을 직업으로 가진 사람들은 인지적으로 난도가 낮은 직종을 가진 사람들보다 치매 발생률이 평균 22%포인트 낮았다.

치매 발생과 관련된 여러 연구를 종합해 볼 때, 인지 예비능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는 활동으로는 크게 신체 활동, 인지 활동, 사회 활동을 꼽을 수 있다. 복잡하고, 정신적으로 부담이 되고, 불편함을 느낄 수 있는 인지적 과제를 꾸준히 수행하면 인지 기능이 개선될 수 있다. 이런 연구에서 몸을 쓰는 운동의 효과가 머리를 쓰는 인지적 활동의 효과와 비슷하다는 것이 재미있는데, 댄스와 같이 머리도 쓰고 몸도 쓰는 활동은 특히 효과가 좋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70~80대에도 아주 젊은 뇌를 가지고 있는 ‘수퍼 에이저(아주 건강하게 늙는 사람들)’들을 연구한 에밀리 로갈스키(Emily Rogalski) 교수 등에 따르면, 느리게 나이 드는 뇌를 가진 이들은 역시 신체 활동과 인지 활동, 사회 활동에 적극적이었다.

머리를 힘들여 더 쓰면 쓸수록 인지 기능이 좋아지고, 그 결과 더 많이 머리를 쓰게 되면 머리는 더 많은 좋은 자극을 받고, 신경 사이에는 새로운 연결이 생겨난다. 이러한 원리는 근육과 똑같다. 계단 오르기는 처음에는 힘이 많이 든다. 하지만 근력이 좋아지면 점점 더 가뿐하게 계단을 오를 수 있고, 운동량은 더 많아지며, 근력은 더 좋아지는 선순환이 생긴다. 쓰지 않으면 기능을 잃고, 그렇게 기능을 많이 잃으면 삶을 잃는다.

이처럼 인지 예비능이라는 관점에서도 다가오는 100세 시대를 살아갈 우리는 평생 공부하고 평생 일하며, 동시에 늘 은퇴한 것과 비슷한 삶을 만들어 가야 할 가능성이 높다. 정규 교육 이후 한 가지 직업을 유지하며 일정 시기가 되면 은퇴하여 휴식으로 노후를 보내는 과거의 생애 주기가 이제는 잘 작동하지 않을 이유는 무궁무진하다. 기술 혁신으로 일자리가 사라지며 또 새로이 생겨나는 과정에서 나의 주 소득원도 계속 바뀐다. 새로운 세상의 기술에 적응하려면 평생 공부를 이어갈 수밖에 없다.

그래픽=양진경

그래서 우리 사회는 노년기의 경제활동을 빈곤의 결과로 이해하던 과거 시각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 평생 공부하고 일하는 것은 치매 예방책이고 노쇠 예방책이 되기 때문이다. 아주 작은 일이나 봉사 활동이라도 좋다. 집에서 나와 어딘가로 향해야 하고(신체 활동), 직무를 수행해야 하며(인지 활동), 사람을 상대(사회 활동)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지금까지 존재했던 우리나라 입시 제도와 이에 맞춰진 공부 방법은 시대에 역행하는 면이 있다. 생애 초기에 아주 잠깐, 사교육비를 더 쏟아넣으며 바짝 공부하기만 하면 그 뒤부터는 더 쉽게 소득을 올려 몸 고생, 머리 고생 없는 여생을 살 수 있다는 가설은 이제는 작동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사실 건강하고 행복한 100년짜리 삶은 평생 나에게 중요하면서 또 즐거운 것을 찾고, 이들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끊임없는 몸 고생과 머리 고생으로 만들어진다. 각자의 삶은 그렇게 평생을 조각해 나가야 할 예술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