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이철원

내가 ‘정율성’이라는 이름을 처음 접한 것은 2012년 2월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서 ‘KBS스페셜 정율성 편’을 심의할 때다. 배운 적도, 들은 적도 없는 정율성이라는 인물을 KBS가 정성 들여 조명한 프로그램이었는데, 당시 위원들 사이에서 의견이 엇갈리며 제재 수위를 결정하지 못했다. 음악가를 다룬 프로그램의 실정법 위반 여부를 따지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더욱이 항일이냐 반공이냐를 놓고 경중을 따질 때는 더욱 그랬다. 아무튼 전문가 의견을 듣는다며 거의 2년이나 심의를 보류하고 지지부진하다가 임기가 끝났다.

최근 광주시가 48억원을 들여 조성 중인 정율성 역사 공원이 시끄러운 반향을 불러일으키는 걸 보며 나는 정율성을 새로운 눈으로 보게 되었다. 강기정 광주시장과 박민식 국가보훈부 장관 사이의 날 선 이념 논쟁을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정율성이 새삼 경이롭게 다가온 건 교과서에 한 줄 언급되지도 않고, 그의 음악을 들은 국민이 거의 전무하며, 한국에서 살지도 않고 유족도 없는 그가 여지껏 현재진행형으로 펄떡거리고 살아있는, 그 엄청난 생명력이었다.

그가 다녔다는 능주초등학교에는 그를 우상화한 벽화와 조형물과 기념관이 있고, 광주에는 생가 표지석과 정율성로와 정율성 노래길이 있으며, 정율성동요제와 정율성국제음악제가 열린다. 19세에 중국으로 건너가 전후(戰後)에는 북한에서 살았고, 1956년 중국에 귀화해 ‘정뤼성’으로 살다 죽은 그를 대체 누가 어떤 교실에서 그렇게 열심히 가르치고 설파했을까. 누군가는 가르치고, 누군가는 설득되었으며, 누군가는 앞장서서 각종 사업에 세금이 흘러가도록 물길을 터주었기에 저 수많은 사업이 가능했던 게 아닌가. 이쯤 되니 11년 전 심의했던 KBS스페셜이 어느 제작진의 아이디어에서 나온 한 ‘점(點)’이 아니라, 이 땅에 거대한 서사 구조를 이루며 집요하게 설득하는 집단적 ‘선(線)’의 일부라는 그림이 그려졌다.

2012년 1월 방영한 ‘KBS스페셜 정율성 편’은 그보다 1년 앞서 KBS 전주방송국에서 이미 방영했다. KBS 서울방송국은 원래 2011년 광복절에 맞춰 방영하려 했으나 이사회의 반대에 부딪혀 6개월 정도 지연 방영하게 되었고, 그의 사상 전력을 문제 삼는 민원이 제기되어 사후 심의에 올라온 것이다. 심의는 불발에 그쳤지만, 설사 강한 제재를 했더라도 별무소용이었을 것이다. 비슷한 시기 방심위가 문제가 있다고 판단해 ‘관계자 징계 및 경고’ 조치한 ‘백년 전쟁’이 6년 후 김명수 대법원에서 ‘문제없음’으로 결과가 뒤집혔기 때문이다. 그렇게 끈질기게 법정 소송을 해서 마침내 정권이 바뀌자 심의 결과조차 뒤집는, 그 은밀하고 지독한 세력을 무슨 수로 대적하겠는가.

눈에 보이지 않는 학교에서 뭘 가르치는지는 알 수 없지만, 분명한 건 ‘정뤼성’이 여러 북한 인민군 군가와 중국인민해방군 군가를 작곡해 6·25 당시 적군의 사기를 돋우는 역할을 했고, 전쟁 중 그가 북한으로 가져간 궁정 악보를 1996년 한국 정부가 그의 중국인 아내 ‘딩쉐쑹’에게서 겨우 돌려받았다는 사실은 제대로 가르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 학교는 ‘반공’보다 ‘항일’을 우선으로 가르치며, 광주에 수백억 원을 들여 ‘호남권 차이나 관광 벨트’를 구축해 중국인 관광객을 유치하는 게 좋은 아이디어라고 제안한다. 조총련이 주최하는 행사에 참석하라고 독려하고, 김여정이 탈북자를 지칭하는 단어인 ‘쓰레기’라는 말을 학습시킨다.

보이지 않는 학교에서 학습한 학생들이 서울에서, 광주에서, KBS에서, 국회에서, 대법원에서, 배운 대로 실력을 발휘하며 살아가는 한편, 막상 눈에 보이는 진짜 학교는 생사 고비에서 시름시름 앓고 있다. 악성 민원과 괴롭힘에 시달린 선생님들이 잇따라 극단 선택을 하자 그동안 참고 있던 선생님들이 거리로 나와 아동복지법을 개정하고 교권을 법으로 보호해 달라고 요구하는 시위를 하고 있다. 제자들의 해코지가 두려워 연락처를 남기지 않는 교사가 있을 정도로 교사와 학생은 멀어졌고, 학부모는 갑질의 대명사가 되어버렸다. 대학 입시는 의대 블랙홀에 빠져있고, 교육은 거대한 사교육 시장과 일타 강사들이 주무른다.

이런 상황에서 감사원은 학원에 문제를 팔아넘긴 교사를 막기 위한 소위 ‘교육 카르텔’에 대한 감사를 시작했다. 이권 카르텔보다 더 무섭고 견고한, 그러나 눈에는 보이지 않고 숨어서 국가를 흔들고 정신을 병들게 하는, 그런 교육 카르텔이 버젓이 성업하는데, 문제 몇개 학원에 팔고 돈 몇 푼 받는 개인 비리 탐욕형 카르텔을 캐는 게 무어 그리 대수인가. 갑질 하는 부모와 자살하는 선생님들도 막아야 하지만, 그보다 먼저 부모와 선생님과 학생이 함께 설 땅을 견고하게 다지는 게 중요하지 않은가.

나는 정율성을 어디서도 배운 적이 없지만, 이승만도 제대로 배운 기억이 없다. 홍범도도 진지하게 살펴볼 기회가 없었다. 가르쳐 주는 곳이 없었다. 일제강점기와 해방 전후, 그리고 전쟁과 대한민국 초기 공화국에 이른 현대사가 교육의 불모지가 되어 아무나 해석하고 아무렇게나 규정해도 되는 영역으로 허공을 떠도는 사이 대한민국은 뭐가 뭔지 모를 곳이 되어가고 있다.

잡초 무성한 시골길 같은 우리나라 현대사 교육을 뿌리부터 다시 점검하고, 경부고속도로 닦듯, 교육의 고속도로를 놓아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무엇보다 교육과 정치를 떼어 놓아야 한다. 누구 흉상을 세우느니 마느니, 누구 공원을 만드느니 마느니 하는 일이 반복될 때마다, 대한민국이 중요하다 이러면서 논란의 영역에서 건국 논쟁으로 언성 높이는 일을 되풀이하며 살 수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