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1년 대중잡지 ‘동광’에 “지구상에서 석탄이 다 없어질 때는 문명은 어디서 동력을 얻는가”라는 흥미로운 과학 기사가 실렸다. 화석연료 고갈을 염려하며 대안으로 지열, 해수, 풍력, 태양열을 나열하며, 원자력발전까지 제안한다. 놀라운 것은 생산량이 들쭉날쭉한 신재생에너지를 저장할 수단으로 수소를 언급한 것. 용량에 한계가 많은 배터리 대신 풍력발전으로 액체 수소를 생산하자며 “액체 수소는 금일까지 알려진 모든 동력원 중에 가장 힘 있는 것의 하나”라는 근거를 든다. 정확한 설명이다. 액체 수소는 단위 질량당 에너지, 즉 질량 에너지밀도가 월등히 높은 물질이기 때문이다.

인류가 수소를 알게 된 것은 18세기 후반이었다. 영국의 과학자 캐번디시(Cavendish)는 불이 잘 붙는 기체를 발견하고 이를 ‘가연성 공기’라고 이름 지었다. 캐번디시의 실험을 접한 프랑스의 라부아지에(Lavoisier)는 캐번디시의 기체가 영국 과학자 프리스틀리(Priestley)가 발견한 또 다른 기체와 반응하면 물이 만들어지고, 다시 물을 분해하면 두 기체가 발생하는 것을 보인다. 우주는 물, 불, 흙, 공기로 이루어졌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4원소설이 무너지는 순간이다. 물은 더 이상 원소가 아니라는 것이 증명된 것이다. 라부아지에는 프리스틀리의 기체를 ‘산(酸)을 생성하는 원소’라는 뜻으로 ‘산소(酸素, oxygen)’라고 불렀고, 캐번디시의 기체는 ‘물을 만드는 원소’라는 의미로 ‘수소(水素, hydrogen)’라고 이름 붙였다.

수소는 우주의 80%를 차지하지만, 지구에서는 순수한 수소로 존재하기 힘들다. 수소는 가장 가벼운 원소라 지구 중력이 수소를 잡아두지 못하기 때문이다. 해서, 지구의 수소는 대부분 석탄이나 메탄, 등유, 가솔린과 같이 탄소와 결합한 탄화수소나 암모니아, 물 등의 수소 화합물로 존재한다. 인류가 에너지원으로 탄화수소가 주성분인 화석연료를 사용한 이유는 이 때문이다. 석탄이 산업혁명을 이끈 것은 나무보다 에너지밀도가 높기 때문이다. 석탄 이후 석유가 부각된 이유 역시 뛰어난 에너지밀도였다. 또한 석유는 운반과 저장이 쉬웠기 때문인데, 석탄으로는 자동차나 비행기가 탄생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인류의 모빌리티 혁신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사진은 아르테미스 계획의 주 엔진으로 사용되는 RS-25 수소 엔진/NASA, 그래픽=백형선

1931년의 ‘동광’에서 보듯이 화석연료를 수소로 대체하려는 노력은 오래되었지만, 수소를 다루기는 쉽지 않았다. 이런 어려움에도 수소 모빌리티의 첫 성공 사례 중 하나는 아폴로 프로젝트. 인류를 달에 착륙시킨 아폴로의 우주 발사체 새턴V 로켓은 3단으로 이루어져 있다. 1단 엔진은 케로신(등유)을 사용하지만, 2단과 3단은 액체 수소를 연료로 사용했다. 수소는 영하 253도에서 액화되므로 엄청난 비용이 들지만, 어떻게든 무게를 줄이려고 질량 에너지밀도가 우수한 액체수소를 사용한 것이다. 이렇게 확보된 수소 엔진은 아폴로 프로젝트를 이은 우주왕복선의 주엔진 RS-25로 계승되었다. 그리고 RS-25 수소 엔진은 인류를 달에 다시 보낼 아르테미스 계획의 주엔진으로 지금도 사용되고 있다.

그런데 올해 4월과 11월에 발사된 스페이스X의 차세대 발사체 스타십은 수소가 아니라 메탄을 사용한다. 위성 발사체 시장의 60% 이상을 점유한 스페이스X의 팰컨9 로켓은 케로신을 사용하지만, 화성이 목표인 스타십은 더 강력한 엔진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수소가 아니라 왜 메탄일까? 그 이유는 단위 부피당 에너지, 즉 체적 에너지밀도로 이해할 수 있다. 수소는 질량 에너지밀도는 높지만, 가볍기에 부피가 커져 체적 에너지밀도는 낮다. 연료 탱크가 커지면 영하 253도를 유지하는 무게도 증가해, 케로신에 비해 얻는 이익이 많지 않다. 그래서 대안으로 등장한 것이 액체 메탄이다. 같은 크기의 에너지를 담는다면, 액체 수소와 비슷한 부피와 무게인 데다 영하 162도에서 만들어지므로 비용이 싸다. 게다가 엔진을 재사용하는 경우 세척 비용이 만만치 않은 케로신 엔진에 비해 검댕 발생이 훨씬 적은 메탄이 유리하다. 그래서 아마존 설립자 제프 베이조스가 세운 발사체 기업 블루오리진 역시 메탄 엔진을 채택하고 있다.

수소차가 자동차 시장에서 힘든 경쟁을 하는 이유 중 하나도 수소의 낮은 체적 에너지밀도이다. 이를 극복하려고 700기압이라는 엄청난 압력으로 부피를 줄였지만, 높은 압력을 견디는 특수 소재 연료 탱크가 필요했다. 게다가 가벼운 수소의 특성상 고압으로 압축하기가 쉽지 않아 충전소 대기 시간이 길어진다. 이런 문제들 때문에 수소는 승용차보다는 트럭이나 버스 등 대형차 시장에 더 적합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대신 석탄 화력을 대체하고 있는 LNG 발전소는 수소 연료를 도입하고 있다. 부피 제한이 덜하기 때문이다. 발전용 가스 터빈과 동일한 기술을 사용하는 항공기 엔진도 수소가 고려되고 있다.

로봇이나 전기 자동차와 같은 이동체에 사용되는 리튬 이온 전지의 질량 에너지밀도는 ㎏당 불과 0.9MJ(메가줄·Mega Joule). 수소의 1/150에도 못 미치고, 탄화수소 계열의 화석연료에도 한참 못 미친다. 심지어 인간이 에너지로 사용하는 지방 1㎏은 무려 42~95㎏의 리튬 이온 배터리에 해당한다. 앞으로 배터리 기술이 발전하더라도 로봇이 인간을 대체하기 쉽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에너지밀도라는 용어가 이차 전지에서 가장 많이 사용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처럼 인류 문명과 모빌리티의 역사는 에너지밀도에서 최선의 답을 찾는 과정이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당면한 문제 역시 에너지밀도에 달려 있고,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전개될지 또한 여기서 결정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