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조선디자인랩 정다운

‘유붕자원방래(有朋自遠方來) 불역낙호(不亦樂乎).’

강의를 할 때 이게 무슨 말이냐고 하면 대부분 큰 소리로 이렇게 대답한다. “벗이 있어 먼 곳에서 찾아오니 이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 과연 그럴까? 공자(孔子)가 과연 그런 뜻으로 한 말일까? 그런 정도의 말인데 ‘논어’라는 책의 서두에서 두 번째 자리를 차지할 수 있을까? 다시 물어본다. “그러면 가까이에서 늘 만나는 벗이 오면 기뻐하지 말라는 뜻인가요?” “가까이에 있는 벗과 멀리서 찾아온 벗을 차별해서 대우하라는 말일까요?” 그때야 상황을 눈치챈 청중은 웅성웅성한다.1

우선 우(友)가 아니라 붕(朋)이다. 붕은 벗 중에서도 뜻을 같이하는 벗[同志之友]을 말한다. 조직에서 상하 관계로 말하면 윗사람에게 충분한 신뢰를 받는 사람이 바로 그의 붕이다. 그런 붕이 원(遠)에서 온다? 이건 또 무슨 뜻일까? 임금은 권력을 갖고 있기 때문에 측근, 근신(近臣), 후궁 그리고 친족들에게 둘러싸이기 마련이다. 이들이 근(近)이며 사(私)이다.

자연스럽게 일반 백성의 공적인 의견이나 비판적인 견해를 들을 기회가 거의 없다. 바로 이럴 때 그냥 그런 신하[具臣]가 아니라 뜻을 같이하는 붕신(朋臣)이 있어 그가 그런 쓴소리, 비판, 공적인 의견을 듣고 와서 가감 없이 전할 때 임금이 성내지 않고 오히려 정말로[亦] 즐거워하는[樂] 표정을 지을 때라야 그 붕신은 다음에도 또 그런 어려운 이야기들을 임금에게 전달할 수 있다. 임금이 조금이라도 즐거워하지 않는 표정을 지으면 제아무리 신뢰를 받는 신하라도 귀에 거슬리는 이야기를 감히 하기 쉽지 않다. 그렇게 되면 위아래 관계에 틈[隙]이 생겨난다. 최근 대통령과 여당 비대위원장 사이에 일어난 일이 바로 이 점을 보여준다.

원(遠)이란 “국민 눈높이”이다. 자칫 즐거워하지 않음을 보이는 것으로 끝날 뻔했다. 그후 우여곡절을 거쳐 봉합되었다 하니 일단은 즐거워함[樂]으로 마무리된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