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반니 도메니코 티에폴로, 눈을 가린 큐피드, 1770~1790년경, 종이에 펜과 잉크, 뉴욕 메트로폴리탄 박물관 소장.

두 눈을 가린 오동통한 사내아이가 활과 화살을 손에 쥐고 날개를 펼쳐 구름 위로 날아오른다. 사랑의 신 큐피드다. 화가 조반니 도메니코 티에폴로(Giovanni Domenico Tiepolo·1727~1804)는 18세기 베네치아 최고의 화가로 손꼽히는 조반니 바티스타 티에폴로와 역시 베네치아 화풍을 대표했던 명문 화가 집안 과르디의 딸 사이에서 태어났다. 물감이 흘러넘치는 핏줄을 타고났던 도메니코 티에폴로는 나이 열셋에 이미 최고의 실력을 갖추고 아버지와 함께 유럽 전역을 누비며 주요 작품을 함께하기 시작했다. 청명한 하늘, 레이스 같은 구름 위로 우아한 신화 속 인물들이 유영하는 아름다운 천장화로 일가를 이뤘던 티에폴로의 아들답게 그의 유려한 필력은 이처럼 단순한 펜 드로잉에서도 뚜렷하게 드러난다.

서양 문화에서 눈을 가린 인물로 대표적인 게 바로 큐피드와 정의(正義)의 여신이다. 눈을 가리고 천칭을 든 정의의 여신은 편견이나 사심 없이 객관적으로 옳고 그름을 판단한다는 의미를 담았다. 편견과 사심 없는 정의에 반대할 사람 있겠냐만, 큐피드의 경우는 조금 얄궂다. 신이든 인간이든 ‘맹목적으로’ 쏘아댄 그의 화살을 맞으면 속절없이 사랑에 빠져 염치, 체면 다 팽개치고 구애 상대를 쫓는데 상대가 이미 임자가 있을 때도 있고 정작 상대는 싫어서 달아나다 비극적인 최후를 맞기도 했으니 말이다. 따지고 보면 큐피드는 사랑의 신 비너스와 전쟁의 신 마르스 사이의 아들이라니 그의 화살촉에서 시작된 사랑이 다른 이에겐 전쟁이 되는 사연도 일리가 있다.

내일은 선물과 함께 사랑을 고백한다는 ‘밸런타인데이’다. 모든 고백이 ‘사랑’으로 끝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