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탄불은 아름답다. 풍광도 수려하지만 이질적인 것들이 다투지 않고 어우러지는 공존의 미학이 핵심이다. 동로마 기독교의 심장이었던 성소피아 사원과 이슬람 술탄의 상징인 블루모스크가 나란히 서 있다. 중세 오스만 제국 유적들의 실루엣은 신도시 마천루들의 스카이라인과 이어지며 묘한 대비를 이룬다. 최대 번화가 이스티클랄 거리에는 이슬람 복식으로 몸 가린 여성들과 미니스커트를 입은 여성들이 거리낌 없이 섞여 걷는다. 도시는 두 대륙을 하나로 품는다. 보스포루스 해협을 가로지르는 세 개의 대교와 두 개의 터널은 아시아와 유럽을 잇는다. 바다 위로 페리들이 분주하게 오가며 시민들을 실어 나른다. 옆 동네 마실 가듯 대륙을 넘나드는 이른바 유라시아시(市)다.

공존의 미학에는 필연적인 긴장이 따른다. 이스탄불은 경계가 갖는 고단함을 품고 있다. 두 가지다. 하나는 지질학의 경계, 즉 충돌하는 지각판 위를 살아가는 지진의 공포다. 다른 하나는 주변의 이질적 국가들과 충돌하며 지정학적 경계를 살아가는 이의 부담이다.

그래픽=송윤혜

작년 2월 튀르키예 남부 대지진은 이 땅이 얼마나 위험한 곳인지를 새삼 각인시켰다. 튀르키예는 유라시아판, 아라비아판 그리고 아프리카판 등 세 개의 거대한 지각판 사이에 자리한다. 작년 지진이 이 판들이 맞물리는 동아나톨리아 단층에서 일어났다면 다음 지진은 북아나톨리아 단층대에 있는 이스탄불을 덮칠 것이라는 공포감이 퍼져있다. 인구 1600만 이스탄불에 작년 수준의 대지진이 찾아온다면 상상할 수 없는 재앙을 의미한다. 25년 전 이스탄불 근처 마르마라 대지진의 경험은 트라우마로 남아있다. 그 이전에 지어진 건물들은 내진설계가 제대로 되어있지 않다. 전문가 중 일부는 아예 주민들을 안전지대로 이주시키는 것 외에는 답이 없다고까지 말하고 있다. 필자가 몸담고 있는 대학은 내진 테스트 이후 도서관 출입을 제한하고 있고, 기숙사도 흑해 지역으로 옮겼다. 지진의 빈도도 급증하고 있다. 지난주만 해도 마르마라 바다 서쪽 다르다넬스 해협 근처 차나칼레에서는 하루에 다섯 차례 이상의 약진이 발생하기도 했다.

갑자기 땅이 갈라지고 바다가 넘치는 지질학적 자연재해는 어찌할 도리 없는 천형에 가깝다. 내진 설비 보강에 최선을 다하면서 운명에 맡기는 수밖에 없다. 반면 또 다른 판의 경계, 즉 지정학의 단층선에서는 선택이 미래를 가른다. 리더의 전략과 비전에 나라의 흥망이 달려있다. 튀르키예는 국제정치의 지정학 판도상 중동판, 유럽판, 중앙아시아판, 그리고 러시아판의 단층선 위에 있다. 대륙 러시아를 머리에 이고 있고, 동쪽으로는 아르메니아와 이란을, 남쪽으로는 분쟁의 본산과도 같은 중동과 접해 있다. 서쪽엔 불구대천 원수인 그리스의 섬들이 점점이 흩어져있다.

만만치 않은 환경이다. 하지만 지진과 달리 이 지정학적 현실은 활용하기 나름이다. 잘 다루어내면 국운을 끌어올릴 수 있다. 반면 우매하게 처신할 경우 나라는 순식간에 추락한다. 냉전기 튀르키예는 자유진영을 선택했다. 한국전쟁에도 파병했고, 나토에도 가입했다. 견고한 반공 국가로 자리 잡았다. 흑해를 사이에 두고 소련의 붉은 군대와 마주하는 부담은 작지 않았다. 그러나 자유진영에 서는 것이 튀르키예 공화국이 사는 길이라 믿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국부 케말의 신념이었고 당시 그 선택은 옳았다.

그러나 냉전이 끝난 이후 이념의 진영이 해체되자 환경이 달라졌다. 유럽 국가들이 튀르키예를 암암리에 멀리하면서 분위기가 바뀌기 시작했다. 특히 9·11 테러 이후 세계적으로 퍼진 반이슬람주의는 튀르키예의 유럽 지향에 제동을 걸었다. 2002년 현 집권 여당의 등장 이후 튀르키예는 독자 외교 노선을 펼치기 시작했다. 지정학적 환경을 활용하며 주변 국가들과의 관계 개선을 위한 적극적·공세적 외교를 폈다. 이를 에르도안 정부 초기의 이른바 ‘분쟁 제로(zero conflict)’ 전략이라고 한다. 이 노력은 가시적 성과를 냈다. 마침 고속 경제성장과 맞물려 튀르키예의 소프트파워는 급등했다. 중견국 연대의 외교 공간을 직접 만들어내기도 했다. 2012년 아랍의 봄 당시 정권이 무너진 아랍 국가들의 국민들 다수는 자국도 에르도안 같은 지도자가 필요하고 나아가 튀르키예처럼 되고 싶노라 말했다.

그러나 최근 상황은 녹록지 않다. 분쟁 제로 전략은 틀어졌다. 미묘한 지정학의 그림을 염두에 두고 섬세하게 다루어야 하는 게 외교다. 튀르키예는 공세적으로 치고 나갔다. 속도가 너무 빨랐다. 오스만 제국의 향수를 연상시키며 전 방위로 관여하다가 여기저기서 분쟁에 휘말렸다. 지금은 믿고 의지할 만한 친구가 딱히 없다. 미국과 각을 세우고, 러시아에 대한 우려는 여전하고, 신장 위구르 문제로 인해 중국도 경원하고 있다. 유럽과의 교역은 여전히 높은 수준이나 상호 불신은 막을 길이 없다. 무슬림 형제단 등 이슬람 급진주의 세력을 물밑 지원하다가 아랍 국가들과도 척을 졌다. 하마스를 돕다가 이번 가자사태 초기에 곤경에 처하기도 했다. 나토 회원국이면서도 우크라이나 문제에 뜨뜻미지근하다. 일부 전략가들은 이를 ‘값진 고독(precious loneliness)’이라는 희한한 수사학으로 정당화한다. 어색하다.

이스탄불에서 우크라이나 키이우까지 1150㎞ 떨어져 있다. 팔레스타인 가자지구까지 1151㎞다. 유럽과 중동 두 전쟁터와 신기할 만큼 같은 거리에 있다. 비행거리 3시간 이내에 전 세계 분쟁의 50% 이상이 벌어지고 있다고 한다. 그만큼 이스탄불은 지정학의 중심에 있다. 이를 공존의 미학이 작동하는 국제 정치의 공간으로 만들어낼 상상력이 절실하다. 분쟁의 문제를 다루기엔 제네바나 뉴욕, 빈 못지않은 곳이다. 역사와 문명을 품은 이스탄불이 제 몫을 해 주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이곳이 평화롭고, 사람들이 낙천적이어서가 아니다. 지진과 전쟁과 난민, 테러의 공포에 익숙하고 그 처참한 본질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이스탄불이기에 기대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