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로비전 송 콘테스트를 좋아한다. 유럽방송연맹 회원국 가수들이 1년에 한 번 겨루는 대회다. 1956년에 시작했다. 유럽은 대단하다. 뭐 하나 시작하면 끝낼 줄을 모른다. 유럽 여행 처음 간 어머니는 “가도 가도 교회밖에 없더라”고 하셨다. 전통이라면 교회든 노래자랑이든 보존하고야 마는 게 역시 유럽답다.

오랜만에 유로비전을 보며 느낀 사실이 하나 있다. 촌스럽다는 것이다. 유럽 대중문화는 가서 살아보면 참 촌스럽다. 한국까지 건너오는 유럽 대중문화는 유럽서 가장 세련된 것들이다. 영국, 프랑스 등 몇몇 국가 한정이다. 유럽은 넓다. 영국 록과 핀란드 록이 같을 수는 없다. 프랑스 팝과 세르비아 팝이 같을 수도 없다. 음악 강국인 영국은 유로비전에 별 관심이 없다. 진짜 인기 가수는 참가하지 않는다. 나에게 유로비전의 재미는 심야 트로트 케이블 채널을 보는 재미와 비슷하다.

아시아에도 유로비전 같은 게 있었다. 정훈희가 ‘안개’로 입상한 도쿄국제가요제가 있었다. 민해경이 ‘보고 싶은 얼굴’로 대상을 받은 ABU국제가요제도 있었다. 서울국제가요제도 1978년부터 1986년까지 열렸다. 당대 국제 가요제에서 우승하면 스포츠조선 1면에 날 정도로 인기가 있었다.

지금 아시아에 필요한 건 국제 가요제일지도 모른다. 아시아는 넓다. 우리는 서로를 잘 모른다. 옆에 붙은 한중일 삼국도 서로를 잘 모른다. 만날 자국 문화가 세련되다 주장하며 대결을 벌인다. 그렇다면 가장 촌스러운 대중문화를 선보이며 서로를 마음껏 비웃을 수 있는 화합의 장도 필요할 것이다. 웃음만큼 우정에 좋은 건 없다.

한국 참가자? 뉴진스는 아니다. 임영웅도 아니다. 임영웅 요즘 노래는 너무 세련되다. 심야 트로트 채널에서 요즘 잘나가는 노래가 하나 있다. 더나은의 ‘장구야’다. “장구를 알았고 당신을 만났다/ 장구야 장구야/ 더 크게 소리쳐라/ 내 님이 듣도록”이라는 가사가 절절하고 구성지다. 품바 여신 버드리와 협업한다면 우승권도 가능할 것이다.

김도훈 문화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