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최고지도자 아야톨라 세예드 알리 하메네이가 수도 테헤란에서 열린 사관학교 임관식에 참석하고 있는 모습. 2023.10.10 /AFP 연합뉴스

6월 28일, 이란 국민은 대통령을 새로 뽑는다. 5월 19일 헬기 추락 사고로 사망한 에브라힘 라이시 전 대통령의 후임을 선출하는 보궐선거다. 전문가들은 이번 대선의 반향이 그렇게 크지 않으리라고 전망한다. 이스라엘과 서로 본토를 겨냥하며 미사일을 주고받을 만큼 엄중한 정세 속에서 치러지는 선거임에도 생각보다 차분한 이유는 무엇일까? 대선보다는 최고지도자의 후계 구도가 향후 이란의 미래를 좌우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기 때문이다.

전 국민의 직선으로 선출된 국가 최고위 정치인 대통령이 버젓이 있음에도 종교 지도자가 더 중요한 나라는 지구상에 이란밖에 없다. 유례 없는 통치 체제를 실험하고 있는 셈이다. 이쯤 되면 궁금해진다. 중동 패권을 다투는 역내 강국 이란 정치 체제의 특수성은 어떤 것일까? 이 체제를 이해해야 현재 중동에서 벌어지는 지정학 구도도 읽어낼 수 있다.

그래픽=송윤혜

먼저 이란의 국호를 보자. 이란 이슬람 공화국(Islamic Republic of Iran)이다. 본래 공화국 앞에 붙는 수식어로는 ‘민주’가 자연스럽다. 국민이 주권을 갖고 투표 행위를 통해 정부에게 일정 기간 권력을 위임하는 체제가 일반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란은 공화국 앞에 ‘민주’ 대신 ‘이슬람’이 자리하고 있다. 이슬람은 유일신 사상에서 발원한 ‘하나 됨의 원칙’ (타휘드)을 신봉한다. 만물과 인간사 모든 영역은 절대자 알라가 통치한다고 믿는다. 투표는 하되 주권은 인간에게 있지 않고 신에게 있다. 그렇기에 원칙적으로 정치와 종교의 불가분성 즉 정교일치에 가깝다. 그렇다면 이슬람 원리를 따르면서도 선거를 통해 정치 권력을 구성하는 이른바 ‘이슬람 공화국’의 본질은 무엇일까?

이란 정치에는 인간의 영역과 신의 영역이 있다. 인간의 영역은 선거를 통해 뽑히는 대통령과 국회의원이 구성하는 공화국의 정치다. 반면 이슬람 성법을 평생 공부하고 익혀온 성직자들은 신정의 영역에 포진한다. 그 정점이 최고 지도자다. 이란은 신정과 공화정의 결합 즉 하이브리드 정치 체제다. 1979년 혁명을 통해 팔레비 왕조를 축출하고 집권한 종교 지도자 호메이니가 만든 ‘이슬람 법학자 통치’(벨라야티 파키) 체제의 본질이다. 즉 통치의 핵심 주체는 선출직 대통령이나 국회의원들이 아니라 궁극적으로 이슬람 성법을 체화한 이들이라는 점을 강조하는 개념이다.

사진=EPA 연합뉴스

호메이니의 논리는 이렇다. 이란은 혁명을 통해 왕조를 타파하고 선거를 통해 지도자를 뽑는 공화정을 구현했다. 그러나 사람의 선택에는 오류가 있을 수 있고 권력을 쥔 대통령과 정치인들 역시 잘못된 길을 갈 수 있다. 자칫 왕정 독재로 회귀하거나 중우정치로 타락하기 쉽기에 필요할 때마다 신의 섭리가 작동해야 한다. 신이 허용한 자유의지의 범위 내에서 무슬림들은 자유롭게 리더를 선출하고 의사를 결정하되, 최고 지도자와 성직자들의 조언과 후견을 통해 이슬람 통치를 반영하도록 설계한 것이 이란 이슬람 공화국이라는 것이다.

어찌 보면 플라톤의 철인 통치와 민주주의가 묘하게 결합된 모습이기도 했다. 혁명 이란의 생경한 이 체제는 중동 각국에 반향을 일으켰다. 주변 아랍 국가들은 절대왕정이거나 권위주의 군부 공화정 일색이었다. 선거가 아예 없거나 있다 해도 형식적이었다. 그런데 혁명 이란은 선거를 하면서도 서구식 정치 체제와는 달랐다. 민주주의이면서도 동시에 이슬람의 통치가 살아 있는 느낌을 주었다. 특히 주변 아랍국의 무슬림 청년들이 이란을 주시하기 시작했다. 자기 나라에서는 아무리 노력해도 정치권력을 잡을 수 없는데 이란에서는 빈곤한 평민 출신 대통령도 등장하지 않던가. 적어도 이 정치 체제만큼은 온통 권위주의와 세속주의가 난무하는 중동에서 이란의 소프트 파워였다.

여기에 더하여 이란은 혁명의 수출을 국시로 삼았다. 이란식 체제야말로 알라가 원하는 이 땅의 정치 구조임을 설파하며 이슬람권 전역에 혁명이 전파되기를 바라고 있다. 이슬람권 국가 곳곳에 친이란 무장 정치 세력을 포진시키고 지원하기 시작했다. 만국의 무슬림을 단결시키겠다는 의미랄까? 혹자는 마치 과거 볼셰비키 혁명의 확산을 추구하던 코민테른과 유사하다는 평가를 내리기도 한다. 최근 저항의 축으로 불리는 헤즈볼라, 하마스, 후티 반군 등과 연대해왔다. 페르시아 걸프를 사이에 두고 이란과 마주하는 사우디아라비아 등 왕정 국가들은 아연 긴장했다. 왕실에 불만을 가진 국민 중 일부가 이란식 체제를 선호하며 혁명 분위기를 띄울까 염려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문제는 아무리 설계가 잘된 제도나 체제라 해도 결국은 운용하는 사람이 망가지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종신직 최고 지도자 하메네이는 조언자의 역할을 넘어서 모든 권한을 가지기 시작했다. 혁명의 주역이자 초대 최고 지도자였던 호메이니보다 심하다는 평이 중론이다. 인간의 독재와 부패 그리고 타락을 막고 이슬람의 진리로 견인하겠다는 선의는 잘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신의 이름으로 인간을 억압하고 최고 지도자가 권력을 독점하는 체제라는 비판에 노출되어 있다.

노령인 현 최고 지도자의 건강 이상설이 파다하다. 후계 구도에 관심이 높아져 있다. 차기 최고 지도자가 누가 될지 아직은 불확실하다. 그러던 중 돌발 변수가 생겨났다. 유력한 차기 최고 지도자 후보였던 라이시 대통령의 사망 소식이다. 선두 주자가 갑자기 사라지자 다음 후보로 현 최고 지도자의 아들인 모즈타파 하메네이가 거론되고 있다. 아들이기에 넘어야 할 산이 많다. 혁명 이후 스무 차례에 걸쳐 권력의 혈연 승계를 신랄하게 비판했던 호메이니의 유지 때문이다. 그럼에도 아들이 대를 이어 최고 지도자 권력을 잡게 된다면, 바로 그 시점부터 이란 이슬람 공화국의 토대인 혁명의 정통성은 심각한 도전을 받을 수밖에 없다.

인남식 국립외교원 교수·중동정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