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이철원

부자는 높은 곳을 좋아한다. 높이는 권력을 주기 때문이다. 높은 곳에서는 멀리까지 볼 수 있다. 더 넓은 공간을 시각적으로 소유할 수 있다는 뜻이다. 위에서는 나보다 낮은 곳에 있는 사람들을 관찰하기 쉽다. 반면 아래에 있는 사람들은 높은 위치의 사람을 보기 어렵다. 예를 들어 아파트에서 10층에 사는 사람은 해가 지고 나면 건너편 동의 9층, 8층이 훤히 들여다보인다. 하지만 9층, 8층 사람은 10층을 볼 수 없다. 높이 차이는 정보의 비대칭을 만들어 낸다. 그래서 회장님 방은 꼭대기 층이고, 펜트하우스가 가장 비싼 것이다.

그런데 이상한 점이 있다. 달동네의 옥탑방도 높은 곳이어서 내려다보는 시야가 좋다. 그런데 옥탑방은 저렴하다. 그 이유는 펜트하우스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가지만 옥탑방은 걸어 올라가야 하기 때문이다. 높은 곳까지 올라가는 것은 중력을 거스르는 행위여서 힘들다. 달동네 옥탑방은 버스 정류장이나 지하철역에서 몇백 미터를 등반해야 갈 수 있다. 장을 본 물건을 들고 올라가면 더 힘들다. 그런데 화석 에너지를 이용하는 자동차나 엘리베이터를 타면 힘들이지 않고 올라갈 수 있다. 달동네와 비슷한 언덕 위 주택이어도 성북동, 평창동, 한남동은 부자 동네다. 자동차를 타고 갈 수 있기 때문이다. 자동차 도로와 주차장이 확보되지 않은 야산은 저소득층 주거지인 달동네가 된다. 달동네에서는 출퇴근 시간도 길어진다. 그러다 보니 일자리를 얻기 힘들어지고 소득 격차는 더 벌어지는 사회적 문제가 생긴다. 이런 주거지의 높이차가 만드는 사회적 문제를 해결한 좋은 사례가 있다.

남미 콜롬비아에서 둘째로 큰 도시인 메데인은 마약 소굴로 유명한 도시다. 이곳은 파블로 에스코바르라는 마약왕의 근거지였다. 이 도시의 높은 고지대에는 저소득층이 모여 사는 달동네가 밀집해 있었고 치안이 나빴다. 그곳에서는 도심으로 출퇴근하는 데 4시간이 넘게 걸려서 도심 내 일자리를 구하기가 어려웠다. 이런 사회적 문제를 해결한 것은 곤돌라였다. 우선 달동네 꼭대기에 해외 건축상을 받을 정도로 멋있는 마을 도서관 하나를 건축했다. 그리고 그 도서관과 저지대에 위치한 대중교통 역 사이를 연결하는 곤돌라를 설치했다. 곤돌라는 하나하나의 크기는 작지만 연속적으로 순환하기 때문에 사람을 실어 나르는 데 아주 효과적이다. 곤돌라의 승객 운반 효율성은 버스보다 높고 지하철보다 조금 낮다. 곤돌라 덕분에 달동네 주민은 30분도 안 되어서 저지대에 내려와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 있게 됐다. 출퇴근 시간이 절반 이하로 줄었다. 도심 내에서 일자리를 구할 수 있게 되었고, 달동네의 치안과 환경이 점점 좋아졌다.

달동네를 개조한 또 다른 사례는 홍콩의 에스컬레이터다. 홍콩은 대부분의 일자리가 해안가 저지대에 있고 주거는 높은 경사 지대에 있다. 부자들은 차를 이용하지만 대부분의 시민은 걸어야 했다. 출퇴근 시간을 줄이기 위해 홍콩은 저지대 도심과 높은 곳의 주거지를 연결하는 에스컬레이터를 설치했다. 한 개의 라인으로 구성된 이 에스컬레이터는 출근 시간에는 위에서 아래로, 퇴근 시간에는 아래에서 위로 운행한다. 이를 통해서 사람들은 짧은 시간에 출퇴근할 수 있게 되었다.

우리나라는 국토의 70%가 산지로 되어있다. 도시라고 하더라도 산과 언덕이 많다. 서울과 부산이 대표적이다. 이런 도시에는 고지대에 저소득층 주거가 형성된 경우가 많은데, 이런 경우 대중교통을 이용하기가 쉽지 않다. 걷기에 좋은 도시를 만들려면 대중교통으로의 접근성을 높여야 한다. 대중교통 이용률이 높아질수록 자동차의 이용이 줄어들고 도시는 더욱 쾌적해진다. 걷는 사람은 길을 걷다가 가게에 들어가 소비를 할 가능성도 커져서 소상공인의 경제도 활성화된다. 자동차를 많이 타는 도시에서는 자동차회사, 석유회사, 온라인 쇼핑의 매출만 늘어난다. 우리의 대도시에는 이미 지하철 인프라가 잘 갖추어져 있다. 달동네에 에스컬레이터나 곤돌라 같은 높이차를 극복할 수 있는 기반 시설이 들어가면 기존의 대중교통을 더욱 잘 이용할 수 있다. 적절한 에스컬레이터는 높이가 만드는 사회계층의 분리를 평준화시키는 장치다. 한의원에서 잘 놓은 몇 개의 침은 병을 치유한다. 도시 내 적절한 곳에 놓인 에스컬레이터는 도시의 사회적 경제적 문제를 치유할 수 있다.

유현준 홍익대 교수·건축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