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픽=백형선

최근 한 국책 연구원의 보고서가 입방아에 올랐다. 한국조세재정연구원이 발간한 ‘생산 가능 인구 비율 감소에 대응하기 위한 재정 정책 방향에 대한 제언’이라는 보고서다. 이 보고서를 쓴 장우현 선임연구위원은 생산 가능 인구 확보를 위한 저출산 대책을 단계별로 나열했다. 은퇴한 노인들을 해외로 이주시키자는 것이 그중 하나다. 이유가 걸작인데 “노령층이 상대적으로 물가가 저렴하고 기후가 온화한 국가로 이주해 은퇴 이민 차원으로 노후를 보낼 수 있다면 생산 가능 인구 비율을 양적으로 높이는 데 기여할 수 있다”는 것이다.

대책의 효용성을 따지기 전에 실현 가능성부터 낮다. 대한민국은 거주의 자유를 헌법에서 보장한 나라이다. 이민 가고자 하는 노년층이 있을지도 의문이다. 해외로 이민 갔던 이들조차 양질 의료 서비스를 찾아 노년에 귀국하는 일이 적지 않다. 보상을 어떻게 하든 국익을 위해서 낯선 땅에 가라면 갈 사람이 있을까.

더 큰 문제는 노년층에 대한 관점이다. 이 보고서는 노년층을 생산 활동을 하지 못하는 인구 집단이라 전제하고 있다. 누군가의 돌봄 없이는 생존할 수 없는 상태로 죽기만을 기다리는 사람들이라고 보는 듯하다.

이러한 시각은 한국은행이 지난 3월 발표한 ‘돌봄 서비스 인력난 및 비용 부담 완화 방안’에서도 나타난다. 한국은행은 현재 간병 및 육아와 관련된 돌봄 서비스 부문의 인력난은 큰 비용 부담과 각종 사회적 문제로 이어지고 있다고 진단하며, 향후 고령화에 따라 더욱 심각해질 것으로 예측한다. 돌봄 서비스직 노동 공급 부족 규모는 2022년 19만명 → 2032년 38만~71만명 → 2042년 61만~155만명으로 커질 것으로 보고, 가족 간병 부담에 따른 생산성 손실이 2042년에는 GDP(국내총생산)의 2.1~3.6%에 이를 것이라 내다봤다.

그래픽=백형선

돌봄 서비스 부문의 인력난을 완화하기 위해 한국은행이 제시한 대책은 다음과 같다. 첫째, 급증하는 수요를 국내 노동자만으로 충족하는 것은 불가능하므로 외국인 노동자를 활용해야 한다. 둘째, 외국인 노동자 고용 때 비용 부담을 낮추는 방안도 마련할 필요가 있다. 이를테면 외국인에 대한 고용 허가제 대상 업종에 돌봄 서비스업을 포함하고, 이런 업종에 대한 최저임금을 상대적으로 낮게 설정하는 방식 등을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은행의 관점은 국가 차원에서 건강한 나이 듦이 가능한 여러 정책을 추진해 돌봄 요구를 예방해야 한다는 가장 기본적인 제언이 빠져 있다는 문제를 안고 있다. 이걸 차치하고도 한국은행의 견해는 전형적 스냅샷의 오류에 빠져 있다고 볼 수 있다. 스냅샷의 오류란 변화를 예상하지 않고 세상을 박제된 상태로 보기 때문에 생기는 오류를 말한다. 기대 수명 향상과 경제 발전을 반영하지 못하고 각 연령대에 따른 사람 사는 모습이 지금처럼 유지될 것이라는 가정이 깔린 것이다. 2042년에 돌봄 서비스 대상이 될 것으로 여겨지는 세대는 베이비붐 세대와 86세대인데, 20년 가까이 지난 뒤에도 이 사람들이 현재 노년층과 유사하게 나이 들어갈 것이라 보는 것이다.

그렇지 않다. 베이비붐 세대인 현재의 60대 중·후반은 아직 현역인 사람이 많으며 건강하고 정력적이다. 지금 50대인 86세대는 베이비붐 세대에 비해서도 젊고 건강하게 산다. 인구 집단 연구에서도 65세 이상 인구 중 노쇠가 나타난 사람 비율(유병률)은 점차 낮아지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앞서 고령화를 경험한 일본에서 수행한 연구에 따르면, 2012년~2017년에 노쇠가 있는 노인 비율은 7%에서 5.3%로 낮아졌다. 그동안 늙기의 기술에서 다루었던 것처럼 우리나라의 국민 건강 영양 조사 결과를 역사적으로 비교 분석했을 때도 65세 이상 인구 중 노쇠한 사람 비율은 점차 줄어드는 것으로 나타났다. 우리의 노년은 점점 건강해지고 있다. 이처럼 현재 70~80대의 모습과 10~20년 후 70~80대 모습은 상당히 다를 것으로 예상되므로 돌봄 서비스 대상이 되는 연령대와 돌봄 등 일자리에 참여할 수 있는 연령대를 모두 현실에 맞춰 조정해서 미래를 예측해야 더 타당할 것이다.

그래픽=백형선

한국조세재정연구원의 보고서나 한국은행의 분석을 거슬러 오르면 통계청의 장래 인구 추계가 있다. 언론에서 고령화의 재앙을 연일 보도하게 만든 시발점이다. 통계청의 장래 인구 추계에 따르면, 2060년 기준 노년 부양비율(노인 인구를 생산 가능 인구로 나눈 값)이 91.4%에 이른다. 가히 초고령화 시대의 어두운 미래를 보여주는 결과로 보인다. 그러나 함정이 있다. 노인 기준을 현행 65세로 고정해서 분석한 결과이기 때문이다. 반면 실질적으로 건강 수명이 향상돼 활동적 노년을 맞는다고 가정해서 노인 기준을 76세로 점진적으로 높이면 2060년의 노년 부양비율은 43%에 불과하다. 단지 현실에 부합하도록 분석 틀을 수정하기만 해도 이렇게 적지 않은 차이가 나타나는 것이다.

미래를 예측해 정책 방향을 제시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미래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정확히 내다볼 수 없기 때문이다. 2020년에 코로나가 유행하고 그것도 그렇게 오랜 기간 해결되지 않을 줄 누가 알았겠는가. 그렇더라도 최소한 예측 가능한 요소는 반영하는 것이 타당하다. 인간이 예전보다 더 건강하게 오랫동안 일하므로 은퇴 시기나 돌봄 서비스가 필요한 나이 모두 올라간다는 것은 뚜렷한 경향이다. 사회 참여를 지속하는 활동적 노년은 노쇠와 치매, 돌봄 요구를 예방하는 선순환을 만든다는 증거도 충분하다.

이러한 변화를 무시하고 현재 모습에 미래의 인구 피라미드만 그대로 대입하는 식의 스냅샷 오류에 갇혀 있는 정책은 불필요한 공포와 혼란을 초래할 수 있다. 잘못된 정책 분석 때문에 애초에 필요 없거나 적었을 방안을 도입하면 그에 따른 사회적 비용은 상상을 초월할 것이다. 정책이 일단 실행되면 돌이키기는 매우 어렵다. 초고령화 시대의 미래 예측과 정책 제시가 현실을 정확히 반영해야 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