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전쟁 하면 ‘백마고지 전투’를 떠올리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국가보훈부 자료에 따르면 1952년 10월 6일부터 열흘 동안 일곱 번이나 고지의 주인이 바뀌면서 한국군과 미군은 3500여 명, 중공군은 1만여 명의 사상자가 발생할 정도로 백마고지 전투는 치열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이후 영화와 노래의 소재로도 활용되었다.

신세영의 노래 ‘전선야곡’이 주요 장면마다 울려 퍼지는 영화 ‘고지전’은 백마고지 전투를 모티브로 해 2011년에 상영한 작품이다. 이보다 한참 전인 1963년에는 김수길 감독의 영화 ‘백마고지’가 개봉된 적이 있는데, 동명의 영화 주제가 ‘백마고지’는 명국환이 노래했다. 이 노래는 “못다 핀 가슴에다 포탄을 안고 원수의 심장 깊이 벼락을 내려/ 태극기 높이 꽂은 민족의 영웅”이라며 ‘육탄 삼용사(三勇士)’를 추앙하고 있는데, ‘조선일보’ 1952년 10월 19일 자에서 이들의 활약상을 생생하게 소개하고 있다. 여기에는 백마고지의 재탈환을 위해 장렬히 산화한 강승우 소위와 안영권, 오규봉 하사를 추모하는 기사가 사진과 함께 실려 있다.

명국환의 노래 ‘백마고지’는 격렬한 전투 현장을 그리는 데 집중했고, 김용만이 부른 ‘추억의 백마고지’는 백마고지 전투를 회상하는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다. 대도레코드사와 오스카레코드사에서 1960년대 초에 각각 발매한 10인치 LP 음반에 수록된 ‘추억의 백마고지’는 총 3절의 노랫말로 구성되어 있다. 1절에서 “적진을 노려보며 달리던 소대장님”을 그리워하던 병사가 2절에서는 “만만세 외치면서 쓰러진 그 전우의 마지막 그 모습이 내 눈에 어린다”라며 죽음을 맞이한 전우 생각에 가슴 아파한다. 마침내 승리한 전투의 감동을 떠올리며 “영원히 잊지 못할 추억의 백마고지”라는 후렴으로 노래가 끝난다.

‘백마고지’와 ‘추억의 백마고지’는 모두 4분의 4박자에 단조로 이루어져 있다. 군가풍의 노래 ‘백마고지’와 달리 ‘추억의 백마고지’는 트로트에 자주 등장하는 장식음으로 그 맛을 더하고 있어 음악적 색깔이 다르다. 그러면서도 두 노래 모두 그 어떤 승리도 쉽게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걸, 결국 누군가의 희생 덕분이라는 걸 노랫말로 드러내고 있다.

피카소가 그린 ‘한국에서의 학살’이 6·25의 참상을 전 세계에 알려 평화의 소중함을 각인시켰듯이, 백마고지 전투를 그린 두 노래도 오늘에 이르러서는 결국 평온한 일상의 가치를 일깨우는 데 기여한다. 호국보훈의 달 광고처럼 우리의 모든 일상에 영웅들의 숭고한 희생과 헌신이 있음을 새삼 되새기며, 전장에서 목숨 바친 순국선열의 죽음을 애도하고 일상의 소중함을 잊지 않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