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 들라로슈, 젊은 순교자, 1855년, 캔버스에 유채, 171 x 148 cm, 파리 루브르 박물관 소장.

1839년 다게레오타이프 사진을 처음 본 프랑스 화가 폴 들라로슈(Paul Delaroche·1797~1856)는 ‘오늘 회화는 죽었다’고 탄식했다. 들라로슈는 역사적 사건을 마치 ‘사진처럼’ 정확하게 그리면서 인물의 내밀한 감정까지 섬세하게 드러내는 데 탁월했다.

인간의 내면을 탐색하고 붓 자국 없이 완벽하게 매끄러운 화면을 위해 훈련을 거듭하며 고된 시간을 보냈던 들라로슈의 입장에서, 셔터를 누르기만 하면 눈앞의 장면을 그대로 포착하는 사진기의 등장은 사실 회화가 아니라 화가의 죽음을 의미했을 것이다.

‘젊은 순교자’는 들라로슈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로마 시대에 박해를 받고 죽임을 당한 젊은 기독교인의 시신이 강물에 떠내려오자 절벽에 선 부모가 두 팔을 허우적대며 울부짖는다. 해는 이미 저물어 사방이 어둡지만 순교자 위에는 마치 보름달처럼 휘영청 밝은 후광이 떠올라 그녀의 얼굴을 비춘다. 두 손이 묶인 채 차가운 강물에 몸이 잠긴 것을 빼고는 마치 침대 위에 편히 잠든 듯 평온하고 해맑고 티 없는 얼굴이 아름답다.

천사 같은 순교자의 얼굴은 들라로슈의 아내였던 루이즈 베르네의 초상화에서 따왔다. 스승의 딸에게 한눈에 반했던 들라로슈는 결혼 이후 그가 그리는 거의 모든 천사상에 루이즈의 얼굴을 넣을 정도로 그녀를 아끼고 사랑했다. 안타깝게도 1845년 루이즈는 결혼 10년 만에 고작 서른한 살의 나이로 열병을 앓다 사망했다. 이후로도 들라로슈는 루이즈를 두고두고 그렸다.

사진기는 살아 있는 이의 모습을 담을 뿐, 이미 죽어 화가의 마음속에만 있는 얼굴을 보여주는 건 회화뿐이다. 사진이 개발되고 근 200년이 된 지금도 회화가 죽지 않은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