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성철 변호사·글로벌스탠다드연구원 회장

요즘 셰필드대학의 헹크 데 베르크 교수가 쓴 ‘트럼프와 히틀러’라는 제목의 책이 관심을 끌고 있다. 미국 대통령 후보 도널드 트럼프와 독일의 독재자 아돌프 히틀러를 비교·분석하는 책이다. 결론은 이 두 사람이 여러 가지 면에서 비슷하다는 것이다. 베르크 교수는 이들을 ‘정치적 연기 예술가(Political Performance artist)’라고 지칭한다. 무슨 이야기인가.

한마디로 위기에 빠진 정치가가 ‘정치적 연기를 통해 자신에게 닥친 위기 상황을 극복해 냄으로써 도리어 전화위복을 만들어 낸다’는 뜻이다. 도리어 더 공고한 지지 기반을 만든다는 것이다.

히틀러를 보자. 그는 비록 투옥되고 재판에서 유죄판결을 받은 적이 있지만, 재판 과정에서 그는 당당함과 논리성, 신념 등으로 국민에게 깊은 인상을 주었다. 그것이 지지자를 획기적으로 늘려 주면서 히틀러는 일약 국가적 지도자로 부상하게 되었다. 트럼프도 최근 34개 범죄 행위에 대해 유죄판결을 받긴 했지만, 그는 시종일관 당당했고 덕분에 지지율에도 타격을 입지 않았다. 오히려 후원금이 획기적으로 늘어났었다.

데 베르크 교수가 말하는 핵심은 이것이다. 트럼프의 모습과 약 100년 전 히틀러의 모습이 대단히 비슷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사실상 ‘화’를 ‘복’으로 전환해 버렸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 두 사람에게 다 ‘정치적 연기 예술가’란 타이틀을 붙여준 것이었다.

사실 트럼프는 약점이 많다. 가장 큰 것은 거짓이 너무 많다는 것이다. 문제는 그것이 의도적이라는 것이다. 워싱턴포스트가 분석한 결과는 우리를 놀라게 하는 수준이다. 트윗을 포함한 트럼프의 소통 수단들을 분석해 봤더니 그가 선거 직전에 보낸 트윗들 중에는 무려 503개의 거짓이 있었다. 대통령 취임 후 첫 100일 동안 보낸 것 중에는 무려 492개의 거짓, 왜곡, 또는 오류가 포함되어 있었다.

워싱턴포스트는 또한 그가 대통령 재임 4년간 사용한 여러 소셜 미디어와 공개 석상에서 발언을 조사했더니 무려 3만개가 넘는 거짓과 왜곡이 담겨 있었다고 했다. 이 분석에서 트럼프의 하루 평균 허위 발언은 취임 첫해에는 6차례였지만, 임기 마지막 해에는 39차례에 달했다. 사실 20세기 들어 가장 거짓에 많이 의존한 국가 지도자는 히틀러였는데, 트럼프가 그 기록을 깬 것이다. 정말 놀라운 것은 그럼에도 넘치는 거짓 메시지들이 대부분 트럼프가 원하는 결과를 가져왔다는 사실이다.

나는 트럼프의 거짓말 통계를 보면서 닉슨 대통령 생각이 났다. 그는 1974년 워터게이트 사건과 관련해 간단한 거짓말을 한 번 했다. 보고받아 놓고 받지 않았다고 했던 것이다. 그것이 거짓으로 탄로 나면서 그는 결국 탄핵 위기에 처해졌고, 그 절차가 진행 중일 때 사임했다. 사실 탄핵될 가능성이 너무 컸기 때문에 스스로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닉슨과 비교하면 트럼프는 훨씬 더 많은 거짓말을 했는데도 위축되지 않고 버티고 있다. 세상과 정치 풍토가 이렇게 달라져도 되는 것일까.

일러스트=이철원

사실 트럼프는 영웅주의가 강한 사람이다. 대통령 재임 중 그가 시도했던 북한과의 관계 정상화는 만약 성공했다면 역사가 기억할 만한 것이었다. 만일 그때 그가 김정은과의 대화를 통해 북·미 관계 정상화를 이뤘다면, 미·중 관계는 물론 동북아 전체의 번영에 기여했을 가능성이 높았지만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그렇다면 앞으로 트럼프는 어떻게 될까. 트럼프는 본질적으로 ‘세계인의 시각’을 가진 사람이 아니다. 한국인의 입장에서 세계인의 의식을 갖지 않은 사람이 미국의 다음 대통령이 된다는 건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미국이 2차 대전 이후 계속 발전해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지도적 국가가 될 수 있었던 것은 대통령들이 거의 전부가 소위 ‘세계인’이었기 때문이다.

역대 미국 대통령 중 업적을 남긴 사람은 다 ‘세계인’의 시각을 갖고 있었다. 아이젠하워, 트루먼, 케네디가 그랬고 레이건, 클린턴, 오바마 등이 다 그랬다. 보수·진보를 망라하고 그랬다. 그것은 사실 인류 전체에게 축복이었다고 생각한다. 반면, 트럼프는 임기 2기를 시작할 경우 그가 쭉 천명해왔듯 ‘세계인’이 아니라 ‘미국인’의 길을 걸을 가능성이 크다.

트럼프가 승리한다는 건 그의 습관적인 거짓말이 심판받지 않는다는 뜻이 된다. 이렇게 되면 세계를 이끄는 나라 미국에서 진실과 정의라는 숭고한 가치의 기반이 약해질 수 있어 걱정스럽다. 미국이란 강대국에 대한 신뢰가 저하될 수 있다. 게다가 부정적인 연쇄 파장이 미국 밖으로 전파될 수도 있을 것이다. 다른 나라의 정치 리더들도 자신의 말에 대해 무거운 책임감을 느끼기보다는 거친 언어로 남을 비난하거나 거짓말로 순간을 모면하는 쪽으로 유혹받을 가능성이 커질까 봐 두렵다.

11월 초에 열리는 미국 대선까지 4개월 남짓 남았다. 중요한 변곡점을 향해 매일매일 더 가까이 가는 듯한 느낌이다. 사실 나는 이번 대선에서 트럼프가 승리할까 하는 깊은 걱정과 두려움이 있다. 현재의 추세로 봤을 때 가능성은 정확히 반반인 것 같다. 미국의 이번 대선은 지구촌 역사, 그리고 대한민국의 미래에 큰 의미를 지닌다고 생각한다.

우리같이 미국과 참으로 다양하고도 깊은 군사, 경제 관계를 맺고 있는 나라에 미국 대통령의 자질과 방향성은 형언할 수 없을 정도로 깊은 무게감을 지니는 이슈다.

‘전성철의 글로벌 인사이트’ 연재를 마칩니다. 독자 여러분과 필자에게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