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김성규

‘꿩 대신 닭’이라는 말이 있다. 꿩고기 맛이 더 좋다는 의미보다는 사는 방식, 라이프 스타일이 한 단계 위로 보고 싶다. 닭은 닭장 안에서 산다. 닭장이 주는 최대의 매력은 모이에 있다. 주인이 주는 모이만 먹으면 굶어죽지 않는다. 먹이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는 라이프 스타일이다. 그 대신 닭장을 벗어날 수 없다. 조직 내지는 회사라고 하는 울타리를 벗어날 수 없다. 울타리는 자유를 속박하는 쇠사슬 족쇄도 되지만 자기를 비바람으로부터 지켜주는 바리케이드도 된다.

이에 비해 꿩은 닭장을 벗어난 상태를 가리킨다. 주인이 주는 모이를 먹지 않고 야생에서 자기가 먹거리를 해결해야 한다. 야생은 뭐가 좋은가? 자유가 있다. 출근해야 한다는 강박도 없고, 상사의 통제와 인사고과로부터 벗어나 있다. 야생의 삶은 안전빵이 없다. 리스크가 많다. 그러나 자유가 있다.

감옥에 갇혀 본 사람만이 자유를 알 듯이 출퇴근에 시달려 보아야 닭장 밖의 자유를 안다. 50대 회사원이 임원이 못 되면 엘더(elder·원로)라고 부른다고 한다. 이 엘더들이 회사를 나가지 않고 후배 아래서 자존심 다 버리고 월급쟁이 생활을 악착같이 하려고 한다는 신문 기사를 보았다. 회사 밖은 지옥이라고 보는 것이다. 후배 밑에서 굽신굽신하면서 지시를 받고 사는 생활을 견딘다는 것은 그 자체로 면벽수도(面壁修道)에 가깝다고 여겨진다. 절에 가서 머리 깎을 필요가 없다. 이것이 참선(參禪)이다. 자기 에고(ego)를 죽이는 데는 이거처럼 효과적인 게 없기 때문이다.

닭, 꿩, 독수리의 행태를 연구하는 필자의 입장에서 보면 이는 닭에서 꿩으로의 발전 단계에 역행하는 현상이 아닐 수 없다. 야생에서 꿩은 날아봐야 겨우 200~300m 날 수 있다. 독수리 같은 고공비행은 못한다. 그렇지만 꿩은 야생의 자유가 있다. 꿩의 자유를 포기하고 엘더의 고행길이 우리의 삶이고 인생이란 말인가!

지리산 시인 이원규(62). 그는 25년 전쯤에 지리산으로 튀었다. 서울에서 회사 생활 하다가 주머니에 달랑 40만원 넣고 무대포로 지리산으로 간 것이다. 말은 시인이지만 이원규는 지리산 낭인과(浪人科)를 대표하는 인물이었다. 나는 그를 지리산에서 만날 때마다 맨날 묻는 질문은 하나였다. “뭘 먹고 사나?” 그는 “눈먼 새도 입 벌리고 있으면 굶어 죽지 않는다”고 대답하곤 했다. 그는 요즘 하동 섬진강 앞에 ‘별천지’라는 카페를 우연히 하게 되었으니 지리산 산신령이 사람 굶겨 죽이지는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