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부부와, 프랑스 정부 인사들이 14일(현지시각) 프랑스 파리 포슈 거리에서 올해 올림픽과 프랑스 광복 80주년을 기념하는 연례 바스티유 데이 군사 퍼레이드에서 자원봉사자들이 올림픽 성화 엠블럼을 만들고 프랑스 공군 파트루이 드 프랑스의 알파 전투기가 공연을 하는 것을 지켜보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오는 26일 파리 올림픽이 개막한다. 우리 언론에는 축구·농구를 비롯한 주요 구기 종목에서 한국 대표팀의 출전이 무산된 데 따른 실망감과 그에 따라 메달을 많이 얻기 어려울 수 있다는 우려가 있다. 1988 하계, 2018 동계 올림픽을 개최한 대한민국이 메달 획득을 통한 국위 선양, 그리고 체계적 준비와 차질 없는 운영에 방점을 두어 왔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파리 현지 소식으로는 수질 개선이 되지 않은 센강에서의 수영 여부가 국내에서 화젯거리다. 올림픽 선도국으로서의 프랑스는 왜 2024 올림픽을 유치했고, 무엇을 이야기하고 싶은가? 그들이 만들어내고자 하는 가치는 무엇인가?

2024 파리 올림픽은 프랑스, 그리고 파리의 세 번째 하계 올림픽이다. 1900년 2회 파리 올림픽은 고대 올림픽의 재현에 가까웠던 1회 아테네 올림픽을 세계적인 행사로 본격화했다. 1924 파리는 올림픽 헌장, 선수촌 제도를 비롯한 올림픽 시스템 전반을 확립함으로써 고대 그리스의 올림픽을 국제 자산으로 만들었다. 올림픽의 아버지 쿠베르탱의 나라 프랑스는 그만큼 올림픽에 진지하다.

올림픽은 대회 기간 동안 무기를 내려놓았던 그리스의 정신을 계승해 평화를 추구하고 정치성을 배제하는 것을 기본 정신으로 출발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정치 플랫폼 성격이 강했던 올림픽이 여러 번 있었다. 게르만 민족주의 선전장이었던 1936 베를린을 비롯, 냉전 시대 반쪽 잔치였던 1980 모스크바와 1984 LA 등이 대표적이었다. 21세기에도 그런 기조는 여전히 남아 있다. 2008 베이징과 2014 소치는 중화 제국과 러시아 제국이 다시 세계 역사의 주역으로 등장했다는 선언의 장이었다. 러시아는 올림픽 기간 중 크림 반도를 합병했다. 2016 리우데자네이루 또한 브라질의 남미 맹주로서의 위상 과시 목적이 컸다.

그래픽=이철원

과시에는 대규모 투자가 따른다. 2008 베이징, 2014 소치는 각 527억달러와 597억달러를 썼다.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도 경제 규모 대비 부담스러운 130억달러를 썼다. 대규모로 투자된 경기 관련 인프라가 방치되거나 황폐화되는 사례는 올림픽의 그늘이다. 그리스가 과잉 투자의 여파로 경제 위기를 맞은 이후 많은 도시들이 올림픽 개최를 부정적으로 생각하게 됐다.

최근의 올림픽은 새로운 방향성과 효용이 실험되고 있다. 2012 런던은 기존 시설 활용으로 비용을 절약, 베이징의 4분의 1인 133억달러를 썼다. 핵심 비전도 ‘제국의 부활’이 아닌, 낙후된 동부 런던의 발전이었다. 2020 도쿄도 쓰나미·감염병 등 재해 피해 구제와 공존이라는 소박한 메시지로 사회 동력을 끌어올리고 일본이 맞고 있는 구조적 위기를 극복하자는 공감대를 조성하는 계기로 삼았다. 올림픽을 통해 사회 문제를 조명·해결하고 그에 맞는 공공 가치를 표방하는 소셜 브랜딩을 지향한 것이다.

2024 파리 올림픽도 소셜 브랜딩의 성격이 강하다. 올림픽 개최 비용은 약 88억달러로서 2020 도쿄의 4분의 1 수준이다. 기존 도시 인프라 활용으로 비용을 크게 줄였다. 지하철 현대화, 센강 수질 개선, 서민 주거단지로 전환될 예정인 친환경 선수촌 건설 등 사회자본 정비에 주력하는 것도 런던·도쿄의 경향을 계승한다.

그러나 프랑스의 의도는 소박하지만은 않다. 근대 올림픽 운동의 주창자로서 ‘선도 국가’로서의 프랑스의 리더십을 보여주고자 한다. 런던·도쿄는 재해 구제, 지역 개발 등 로컬을 우선했지만, 프랑스의 목표는 지속 가능, 사회 통합, 친환경, 양성 평등 등 인류의 보편 가치를 이야기하는 플랫폼으로서 올림픽 위상의 재정립이다.

대기업 투자를 유치하면서도 70억유로에 달하는 올림픽 관련 조달 계약 중 25%를 스타트업·중소기업에 할당했다. 또한 ‘소셜 비즈니스 시티’로서의 미래 비전을 선포함으로써 사회 통합의 메시지도 던졌다. 친환경 도시의 미래를 제시하기 위해 나무 17만 그루를 심고, 자전거 위주의 도시 교통 체계를 만들기도 했다. 게다가 최초로 남녀 출전 선수 비율을 50대50으로 구성하고 여자 마라톤을 대회 마지막 경기로 편성하며 양성 평등을 조명하는 노력을 했다.

그 배경에는 두 가지 위기감이 있다. 첫째 프랑스, 나아가서 유럽의 위기다. 사회 모순, 계층 갈등, 패권 상실은 시민들의 무기력으로 이어져 왔다. 선도 국가로서의 실질적 지위와 역할도 과거와 같지 않다. 다른 하나는 올림픽의 위기다. 과도한 투자와 적자가 반복되면서 ‘올림픽의 저주’라는 말이 상식처럼 통한다. 국가주의의 플랫폼으로서도 다른 대체재가 많다. 올림픽에 미래가 있으려면 지속 가능하면서도 존재의 의미가 있는 새로운 모델이 필요하다.

그래픽=이철원

주한 프랑스 문화원장 뤼도빅 기요는 2024 파리를 ‘올림픽의 프랑스 대혁명’이라고 했다. 프랑스는 ‘앙시앵 레짐(구체제)’이 지배하던 세계를 ‘자유·평등·박애’라는 보편 가치로 앞장서 바꾼 나라다. 이번 올림픽을 통해서도 프랑스는 보편 가치의 선도 국가로 자리 잡으며, 사회적 동력을 회복하고, 동시에 올림픽의 가치 또한 회복하려 한다. 과거의 계승을 통해 현재 문제를 극복, 미래 가치를 창출한다는 점에서 프랑스의 의도는 올림픽을 통한 ‘르네상스’의 구현이다.

IOC(국제올림픽위원회)는 비상업성과 탈정치성을 올림픽의 핵심 가치로 강조한다. 그러나 막대한 자본이 투자되는 올림픽은 어쩔 수 없이 상업적이고 정치적이다. 그 경계를 넘지 않으면서 목표를 달성해 내는 균형감이 올림픽의 미학이다. 막대한 국가 자본을 투자해 과시성으로 체제를 선전하거나 메달 숫자를 가지고 우월성을 논하는 것이 ‘성장국가’형 구체제적 올림픽 활용법이었다.

반면 지속 가능한 체제로의 혁신의 계기로 삼고, 문화적 성숙함을 바탕으로 세계 시민사회의 공존을 위한 미래 지향적 메시지를 전하는 플랫폼으로 올림픽을 활용하는 것이 ‘선도국가’형 올림픽의 목표다. 파리가 올림픽을 통해 역동성을 회복하고, 다시금 선도 국가로의 포지셔닝을 해나가는 전기를 확보할 수 있을지 보는 것이 파리 올림픽 관전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