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다 칼로, 파릴 박사의 초상화를 그리는 자화상, 1951년, 섬유판 위에 유채, 41.5 x 50 cm, 개인 소장.

멕시코의 국민 화가 프리다 칼로(Frida Kahlo·1907~1954)가 그린 자화상이자 초상화다. 화가는 휠체어에 앉았고 수척한 얼굴 주위로 흰머리가 성성하다. 어릴 때 소아마비를 앓았던 칼로는 의사가 되기 위해 명문 학교에 당당히 입학했으나 열여덟 살이 되던 해에 끔찍한 교통사고를 당했다. 타고 있던 전차가 버스와 충돌하면서 갈비뼈에서 척추, 골반과 다리까지 온몸의 뼈가 다 으스러졌다. 목숨을 구하기는 했으나, 이후 마흔일곱의 나이로 짧은 생을 마감할 때까지 칼로는 단 한 순간도 통증에서 벗어난 적이 없고, 수술대에 오른 횟수만 무려 서른두 번이었다. 그런 칼로가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건, 머리조차 스스로 가눌 수 없는 상태에서 침대에 누워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 그림이었기 때문이다.

칼로의 그림은 대부분 자화상이다. 홀로 누운 침대 위에 거울을 달고 자신을 가만히 들여다보는 게 일상이었다. 이 그림은 1951년, 9개월간 입원해 일곱 차례의 척추 수술을 받은 다음에 그렸다. 마침내 일어나 휠체어에 앉아서라도 붓을 들 수 있게 됐을 때 처음으로 그린 게 바로 수술을 집도했던 의사 파릴 박사의 초상화였던 것. 칼로는 자기를 고통에서 구원해 준 현실 속 유일한 신적 존재인 의사의 얼굴을 마치 성화(聖畫)처럼 그려 그에게 바쳤다. 화가가 손에 든 건 팔레트가 아니라 반으로 가른 자신의 심장이다. 자기 피에 붓을 담가 그림을 그리듯, 온 마음을 다해 의사에게 감사를 표현했던 것.

이 그림은 칼로의 마지막 자화상이다. 3년 뒤 또다시 고통에 시달리다 세상을 떠날 때까지 제대로 그림을 그리지 못했다. 칼로는 이 한 점에 남은 피를 모두 써버린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