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조선디자인랩 정다운

한 시대에 잠깐 유행하고 사라지는 표현이 있다. ‘선한 영향력’이 그렇다. 한때 모두가 그 말을 썼다. 정치하겠다는 사람도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정치인이 되겠다고 했다. 자기소개서에도 선한 영향력이라는 표현이 넘쳤다. 불법 금융회사 직원도 면접에서는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경제인이 되겠다”고 했을 것이다.

선한 영향력이라는 말은 또 다른 ‘잠깐 유행하고 사라진’ 말과 연결되어 있다. ‘재능 기부’다. 이 표현은 정당히 지불해야 하는 용역비를 아끼려는 고용주들이 남용했다. 이런 식이다. “사회에 선한 영향력을 주고 싶은 00 작가님의 재능 기부를 부탁드립니다.”

영화계에도 그런 단어가 있다. 있었다. ‘진정성’이다. 1990년대와 2000년대 초반엔 진정성이라는 단어가 장마철 러브버그처럼 넘쳤다. 그 시기 한국의 영화제를 간 당신은 관객과 하는 대화에서 이런 문장을 반드시 들어본 적 있을 것이다. “이번 영화는 진정성 있는 소통을 바라는 인간들의 진정성을 진정성 있게 그리려 했습니다.”

그 시절에도 진정성이라는 단어는 쓰지 않으려 애썼다. 과거는 탈색되기도 한다. 구글에 검색어를 쳐 봤다. ‘씨네21 김도훈 진정성.’ 2006년 베를린 영화제 때 쓴 리포트 중 ‘이 영화의 작은 진정성’이라는 문장이 있다. 내 나름대로 긴 경력에서 한 번 저지른 실수다. 출장 중 쓰는 기사는 시간에 쫓기다 보니 진정성 없는 표현을 남발하기 십상이다.

요즘 사과하는 사람이 참 많다. 밀양 성범죄 가해자도 사과했다. 지역 차별 유머로 곤욕을 치른 유튜버도 사과했다. 다른 유튜버에게 돈을 뜯은 사이버 레커도 사과했다. 그들이 사과라는 걸 하고 나면 꼭 “진정성 있는 사과인가?”라는 글이 따라붙는다. 오랜만에 불러내 소고기 사주는 친구의 진정성도 모르는 우리가 그들의 진정성을 어떻게 알겠는가.

한 가지는 기억하자. 친구가 선한 영향력을 끼치고 싶은 재능 기부의 하나로 당신에게 소고기를 사주는 건 아니라는 사실 말이다. 항상 말하지만 진정성은 돼지고기까지다. 삼겹살까지다. 고물가 시대라 항정살도 애매하다.

김도훈 문화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