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맛비가 일시 멈추고, 산 안개 속에 햇살이 비친다. 도라지 밭에 막 자란 잡초를 뽑는데, 준(가명)이가 다가왔다. 20대 중반이다.

“목사님, 악몽으로 잠을 못 잤습니다. 등에 칼을 꽂고 비틀어댑니다. 눈 감으면 칼이 얼굴과 목으로 날아듭니다. 두려움과 아픔, 분노를 견딜 수가 없습니다.”

꿈이 아니다. 트라우마다. 그는 지난 5월 모르는 청년으로부터 칼로 20여 차례 찔렸다. 목에 세 번, 얼굴은 눈 옆부터 턱까지, 칼날은 등 쪽으로 폐를 뚫었다. 왼팔은 근육이 끊어졌다. 피는 4L를 흘려 과다 출혈로 거의 죽은 상태였다. 담당 의사는 살아남은 게 특별해 학회에 보고하겠다 했다. 회복하는 데 6개월 예상했지만, 2주 만에 퇴원하고 공동체에 온 것이다.

“준아, 어떻게 살 수 있었니!”

“저도 놀랍습니다. 부모님은 끔찍한 소식을 듣자, 병원이 아니라 교회로 갔답니다. 믿음이 좋으세요. 자랄 땐 부모님 강요가 있어 싫었지만, 이젠 고맙기만 합니다.”

우린 한동안 말없이 풀을 뽑았다. 땀이 흐른다. 산 바람이 불어와 고마웠다. “목사님, 풀을 뽑으며 내 마음의 죄를 뽑습니다. 그런데 이 왼손은 힘이 가질 않습니다.” 그는 끊어진 근육을 접합했지만 힘을 못 쓴다. 휴대전화도 들기 어렵다. “죽을 때까지 이렇게 된다 생각되면 실망과 분노가 솟구칩니다.”

“그렇겠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회복되지 않겠니? 기적같이 목숨도 살려주셨는데!” 이때에 곁에 있던 중년의 형제가 거든다. “나는 눈이 보이지 않았는데, 지금은 보여! 보이기 전까지는 하나님이 살아계시다고 생각하지 않았어. 기도해.”

그는 뇌종양 수술을 했었다. 의사 선생님은 수술실에서 살아나올 확률이 10%라고 했다. 살아도 의식이 돌아올 확률은 반이라 했다. 수술 전 왼쪽 눈과 귀의 세포는 이미 죽었다 했다. 결국 눈과 귀는 회복되지 않았다. 하지만 어느 날 새벽, 나는 이런 그가 애통하여 그를 부여잡고 기도했다. 이튿날 그는 콩을 고르다가 “왼쪽 눈이 보여요!” 했다. “준아, 너도 포기하지 마라. 눈도 다시 보게 되는데.” “예!”

준이는 찔린 부위가 쥐가 나는 듯한 극한 통증으로 공포와 분노의 밤을 보내곤 한다. “목사님, 거울 앞에 설 때면 얼굴에서 목까지 그어진 칼자국에 분노가 일어요. 이런 얼굴로 평생을 살아야 하나, 분을 참을 수가 없어요. 주님은 용서하라고 하셨지만”

준이는 여느 스타 못지않은 얼굴짱에, 180cm가 훌쩍 넘는 몸짱이다. 운동 금메달리스트이기도 했다. 그랬기에 날벼락 같은 20분간의 칼부림을 맨손으로 버틴 것이다.

“준아, 인생에 제일 크고 어려운 일이 뭘까? 예수께서 원수까지 사랑하라고 하신 것 아니겠니. 그게 십자가 사랑이지. 왜 네가 이런 일을 당했을까? 가장 어려운 문제를 푸는 이가 가장 능력 있는 이가 되겠지. 네게 감추어진 주의 뜻과 사명이 있지 않을까? 고통과 분노를 이길 사랑의 힘을 주십사 기도해보자.”

“예! 목사님.” 눈을 들어보니 앞산에 걸쳐 있던 새하얀 구름이 하늘로 퍼져 오르고 있었다. 오, 주여! 악연이 풀리도록 두 청년에게 자비를 베푸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