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공화당 대선 후보인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지난 13일 펜실베이니아주 버틀러에서 유세 중 총격을 당한 후 경호원의 부축을 받은 채 주먹을 들어올리며 퇴장하고 있다. /AFP 연합뉴스

주님의 섭리를 느끼는 데 필요한 시간은 얼마나 될까? 찰나의 순간이면 된다. 긴 시간이 필요 없다. 삶과 죽음은 찰나에 결정 난다. ‘찰나생(刹那生), 찰나멸(刹那滅)’이다.

트럼프는 찰나의 순간에 무슨 자료 본다고 머리를 살짝 돌리는 바람에 총알이 스쳤다. 총알이 1cm만 옆으로 갔으면 트럼프의 관자놀이에 총알이 박힐 뻔했다. 트럼프에게 운이 있다는 것을 누가 부정할 수 있겠는가!

왜 트럼프가 죽지 않았는가를 인간의 이성으로 설명하기도 어렵고, 합리적 근거를 제시하기도 힘들다. 무신론자도 보이지 않는 신의 세계, 영발의 세계를 인정하기에 딱 좋은 사례이다. 운이 없으면 케네디처럼 총 맞아 죽는다. 트럼프의 생사가 세계사의 흐름을 바꿀 수도 있고, 수십억 내지는 수백억 달러의 주한 미군 주둔 비용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의상 대사의 법성게(法性偈) 17구를 보면 이사명연무분별(理事冥然無分別)이라고 나온다. 눈에 보이는 현실 세계와 눈에 보이지 않는 섭리의 세계가 따로 노는 게 아니고 어느 부분에서는 연결되어 있다는 이야기이다.

미국의 부자 록펠러도 젊은 시절에 기차 시간에 늦게 와서 타려고 하던 기차를 놓친 적이 있었다. 그렇게 놓친 그 기차는 계곡의 다리를 건너가다가 그만 추락해서 승객들이 몰살당하고 말았다. 록펠러는 이때 신의 섭리를 느꼈다고 한다. 록펠러에게 사업 성공의 원인을 누가 물으면 ‘첫째도 운이요, 둘째도 운이요, 셋째도 운이다’는 말을 남긴 이유도 이 사건과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마르틴 루터는 어느 흐린 날 친구와 같이 이야기하면서 들판을 걸어가다가 친구만 벼락을 맞아 죽었다. ‘왜 같이 있었는데 나는 벼락을 맞지 않았는가?’라는 의문에서 루터는 신의 섭리를 느꼈다고 한다. 80년대 초반에 오대산의 탄허 스님은 TV에 나오는 전두환 대통령의 얼굴을 보고 ‘얼굴에 신검살(神劍殺)이 끼었다’고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신검살은 칼 맞아 죽는다는 살이다. 1983년 아웅산 테러 사건에서 전두환이 간신히 운 좋게 죽음을 피했던 걸 보면 탄허 스님의 예감이 근거 없지는 않았던 것 같다.

생사가 왔다 갔다 하는 사건 전에는 어떤 징조나 예지몽을 꿀 수도 있다. 남자보다는 여자들이 예지몽을 잘 꾼다. 트럼프의 아내나 아니면 딸들이 위험한 상황에서 가까스로 빠져나오는 꿈을 꾸었을 수도 있다. 이런 꿈을 당사자 가족에게 직접 확인하면 대박인데, 변방에 사니까 직접 확인할 수 없어서 답답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