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이철원

기술이 인간의 삶과 사회에 미치는 영향이 점점 커지고 있습니다. ‘STS(Science, Technology and Society·과학기술과 사회 연구) SF’라는 이름으로 소설을 써온 장강명 작가가 멀지 않은 미래에 우리가 보게 될지도 모를 기묘한 풍경을 픽션으로 전달합니다.

근미래의 풍경 1회 #포털의 책임

“우리 후보자는 대한민국 장관의 조건이 뭐라고 생각하세요? 후보자는 그 조건에 부합하는 인물이라고 생각하세요?”

질문을 던진 이는 ‘막말테이너’라는 별명이 있는 3선 의원이었다. 상대에게 면박을 주는 일로 팬덤을 얻어서였다. 장관 후보자는 허리를 펴고 대답했다.

“실력과 도덕성을 갖춰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후보자는 실력과 도덕성이 있으세요?”

“말씀드리기 쑥스럽습니다만 학자로서 높은 평가를 받았고, 국제기구와 시민 단체에서 일하며 행정 경험도 쌓았습니다. 또 두 아이의 어머니로 부끄럽지 않게 살았습니다.”

“우리 후보자 태도가 당당해서 좋아요. 지금 화면에 나오는 기사 보입니까? 한번 읽어주세요, 당당하게.”

막말테이너 의원이 말했다. 상임위원장석 아래 커다란 모니터가 있었고, 거기에 일주일 전 한 신문의 칼럼 일부가 나와 있었다. 장관 후보자는 칼럼 기사를 읽었다.

“한국이 ‘네카팡공화국’인가라는 질문에 ‘매우 동의한다’ 또는 ‘대체로 동의한다’고 답한 응답자는 전체의 80%가 넘었다. 이런 답변은 단순히 네카팡그룹의 매출액이 한국 국내총생산(GDP)의 20%가 넘는다는 이유로 나오는 게 아니다. 네카팡이 영화, 방송, 웹툰, 웹소설 등 콘텐츠시장 전체를 장악한 공룡 기업이자 패션에서부터 신선 식품에 이르기까지 유통 시장의 지배적 사업자라는 차원의 이야기도 아니다.”

“우리 후보자는 이 칼럼 읽으신 적 있으세요?”

“예, 의원님. 읽었습니다.”

“이 칼럼에서 네카팡의 진짜 문제점이 뭐라고 합니까? 혹시 기억나요?”

“네카팡 같은 빅테크 기업들이 ‘생각의 틀’을 만드는 시대라고 지적했던 걸로 기억합니다.”

“말 흐리지 마세요, 후보자! 네카팡 같은 기업이 아니라 네카팡 하납니다! 대한민국에 네카팡 같은 기업이 몇 개나 있습니까? 그리고 빅테크가 아니라 포털이에요. 문자 그대로 우리 생각의 관문이 돼버린 기업이다, 이 말씀이에요. 사람들이 네카팡이 편집한 언론 기사를 읽고, 네카팡이 추천한 동영상을 보고, 네카팡 글쓰기 도우미가 만들어주는 문구로 글을 쓰고, 네카팡 버추얼 지도교수가 잡아준 주제로 논문을 쓴단 말입니다. 변호사와 검사가 같은 네카팡 앱으로 재판 전략을 짜고, 그 앱이 중년 부부에게 이혼할지 말지도 상담해줍니다. 후보자, ‘수퍼 알고리즘’이라는 말 들어봤죠?”

“의원님, 그런 말은 들어봤지만 그건 제대로 된 용어도 아니고 실제로 쓰이는 말도 아닙니….”

“들어봤는지 안 들어봤는지 물어보면 들어봤다, 아니다, 하고 대답하면 되지 왜 말이 길어요! 그리고 용어가 뭐가 중요합니까. 수퍼 알고리즘이건, 최상위 알고리즘이건, 알고리즘의 알고리즘이건, 그런 게 있고 그걸 개발하는 데 후보자가 참여한 거 아닙니까! 그 알고리즘이 지금 세상을 지배하고 있어요. 네카팡이 퍼뜨린 가짜 뉴스, 네카팡 때문에 일어난 교통사고, 네카팡 동영상에 중독된 아이들, 그게 다 후보자가 만든 수퍼 알고리즘 탓인데, 거기에 아무 책임감도 못 느껴요?”

“의원님, 저는 공학자가 아니라 사회학자입니다. 제가 참여한 건 네카팡 윤리준칙위원회였습니다. 여러 알고리즘이 공통적으로 지켜야 할 윤리 규칙들을 네카팡이 만드는 데 학자로서 목소리를 내는 게 옳다고 생각했습니다. 제가 기억하기로는 9년 전 바로 이 자리에서 의원님이 네카팡 대표에게 알고리즘들이 지켜야 할 윤리 규칙을 만들라, 그 작업을 내부에서 하지 말고 사회 각계 전문가들과 함께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후보자 말본새 조심하세요! 어디서 건방지게….”

의원이 열변을 토하는 동안 장관 후보자는 생각에 잠겼다. 그들은 포털에 커다란 책임을 지우려 했다. 그 작업에 모든 분야 전문가가 달라붙었고, 덕분에 네카팡은 윤리적 권위를 얻었다. 그리고 영향력이 더 커졌다.

“좀 쉬었다 합시다. 쉽지 않네요.”

장관 후보자가 말하자 시뮬레이터가 꺼졌다. 막말테이너 의원의 모습도 사라졌다. 인사청문회 준비팀장이 생수병을 들고 장관 후보자 자리에 다가왔다.

“내가 순발력이 없죠?”

장관 후보자인 사회학자가 물었다.

“괜찮습니다. 어차피 청문회 전체 영상을 다 보는 사람은 없으니까요. 포털사이트에 요약 동영상이 어떻게 올라갈 건지, 인공지능이 기사를 어떻게 쓸 건지가 중요합니다. 주요 매체들이 뽑을 기사 제목을 예측해봤는데, 갖다 드릴까요?”

청문회 준비팀장이 물었다.

“네, 고마워요. 근데 막말테이너 그 인간도 우리랑 똑같은 네카팡 대화 시뮬레이터로 청문회 준비하는 거 아니에요? 이 시나리오대로 갈지 모르겠어요.”

“그쪽에서 수집했을 장관님 말씀 데이터보다 저희가 수집한 그쪽 데이터가 훨씬 많을 겁니다. 그 양반이 국회의원 된 지도 10년이 넘었으니까요. 저희가 더 정확할 겁니다.”

준비팀장이 대답했다. 네카팡 자회사 중에 몇몇 국회의원들에게 프리미엄 정치 컨설팅을 비공개로 서비스하는 곳이 있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