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조선디자인랩·Midjourney

오랜만에 케이블 방송을 틀었다. 요즘은 케이블 볼 일이 잘 없다. 뉴스는 스마트폰으로 본다. 영화는 OTT로 본다. 뉴진스 방송 영상은 스마트폰으로 재생한 뒤 티브이에 송출해서 본다. 요즘 티브이라는 물건은 집에서 가장 큰 ‘윈도우’에 더 가깝다.

오랜만에 케이블을 틀었더니 꽤 재미가 있었다. 공중파는 단가가 높아 케이블로 몰려간 중소기업들이 저렴하게 제작한 광고를 보는 재미가 있었다. ‘세상을 바꾸는 건 지식이 아니라 예수님의 사랑’이라는 광폭한 문구를 자랑하던 대학교 광고는 오랜만에 바뀌었다. 이젠 ‘(애를 낳아서) 가정을 살려야 한다’고 엄포하는 중이다.

내가 무슨 죄를 지었다고 티브이를 보면서 설교를 들어야 하나. 예수님만 나라 걱정하는 게 아니었다. 한 타이어 회사 광고는 냅다 “아기를 낳고 나라를 구하자”고 외치고 있었다. 과학적 근거가 있을 것이다. 출산율이 높아져야 운전자가 늘어나고 타이어도 많이 팔릴 거라는 당연한 예측? 백년 미래를 내다보는 광고주다.

모두가 나라 걱정이다. 어딜 가도 출산율 이야기다. 다들 진심일 것이다. 모든 건 지나치게 진심이 되면 좀 웃겨지기 시작한다. 평상시와 지나치게 다른 목소리로 지나치게 장엄한 연설을 하는 정치인을 볼 때처럼 말이다. 출산율 이야기도 웃겨지기 시작했다. 케이블 광고가 학위와 타이어 팔겠다고 써먹는 순간부터다.

반세기 사는 동안 슬로건도 많이 변했다. ‘하나 낳아 젊게 살고 좁은 땅 넓게 살자’는 시대에 태어나 ‘자녀에게 물려줄 최고의 유산은 형제입니다’ 시대를 통과했더니 ‘아기를 낳고 나라도 구하자’는 시대에 도달했다. 낳으랬다 말랬다 정신이 없다. 애를 국가가 낳는 줄 알겠다.

나는 이 글을 대구시가 출산율 상승을 위해 110억 세금을 들여 만드는 프러포즈 공간에서 첫 공개 프러포즈를 할 커플에게 바친다. 여러분이 아이를 낳을지는 모르겠다. 여러분처럼 대담무쌍한 사람이라면 뭐가 됐든 나라를 구할 수는 있을 것이다.

김도훈 문화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