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지는 지금

고요히 흔들려라

기름매미여

だいち ゆ あぶらぜみ

大地いましづかに揺れよ油蝉

아침부터 맴맴, 맴맴. 드디어 나타났다, 한여름의 사랑꾼. 짝을 찾는 뜨거운 목소리에 하늘이 울리고 대기가 요동치니 그 생명의 기운으로 대지마저 흔들리는 듯하다. 모더니즘 하이쿠 시인 도미자와 가키오(富澤赤黄男, 1902~1962)의 한 수다.

기름 매미는 찌르르르, 찌르르르 우는 소리가 기름 끓는 소리 같다 하여 붙은 이름이다. 과연 저 나뭇가지 위에서 뜨겁게 달군 기름에 튀김옷 튀기는 소리가 나고 있으니, 기름 매미의 애타는 구애에 애먼 사람 마음도 흔들릴 지경이다. 아니면 뜨거운 여름날이 너무 좋아 저렇게 비명을 지르고 있나.

수년 동안 컴컴한 땅속에서 이 한 계절만을 기다리며 버텨왔을 테니 오죽 좋을까. 그 마음을 상상하면 울어라, 더 울어라, 싶다. 오랜 기다림 끝에 이윽고 탈피해 날개를 폈을 때, 날갯죽지 사이로 불어온 첫 바람은 아팠을까 무서웠을까 시원했을까. 그때 그 해방감, 자유로움은 인간이 느끼는 것과 같을까 다를까. 매미의 마음은 알 길이 없지만, 대지를 뒤흔드는 울음만큼은 확실한 존재감이 있는 한여름의 전령이다.

에도시대에는 이런 하이쿠도 있었다. ‘고요하구나 바위에 스며드는 매미의 울음(閑さや岩にしみ入る蝉の声).’ 교과서에 실린 만큼 아이들에게도 친숙한 바쇼의 하이쿠다. 바람도 물도 스밀 틈이 없는 바위에 소리가 스밀 정도이니 얼마나 요란스럽게 울고 있는가 말이다. 그 시끄러운 소리와 상반되게 도입부가 고요하다고 표현한 건 언뜻 이해하기 어렵다.

하지만 조금 더 생각하면, 매미 소리가 클수록 인간 세상의 고요함은 깊어진다. 매미가 기름 끓는 소리로 울고 있기에, 상반되게 인간 세상은 쥐 죽은 듯 고요하다. 나와 같이 있는 누군가가 뜨겁게 달아오르면 상대적으로 나는 차갑게 식은 듯 보이고, 나와 함께 일하는 누군가가 열정이 넘치면 상대적으로 나는 게으르게 보인다. 세상만사는 상반된 관계에 놓인 저울과도 같다.

가키오가 위의 시를 발표한 건 1952년이다. 일본의 패전으로 겨우 세계 전쟁이 잠잠해지나 싶었지만 미국과 소련이 한반도를 분할 점령하면서 위기감이 고조되다가 6·25 전쟁이 터진 비극의 시기. 아비규환. 매미 소리 같은 건 포탄 소리에 묻혀 들리지도 않는다. 생사의 갈림길에서 헤어져야 했던 가족과 연인의 애타는 외침. 반세기 전 한반도에는 대지를 뒤흔드는 울부짖음이 있었고, 긴 시간이 그 소리를 잠재웠지만, 여전히 우리는 반쪽인 채로 아프다. 그 땅에 사는 우리는 지금 무엇에 고요히 흔들리고 있는가. 과거의 울음을 안고 어떠한 미래로 나아가고 있는가.

정수윤 작가·번역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