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조선디자인랩·Midjourney

전공의(醫)들이 무더기 파업을 시작했을 때 장모께서 입원하셨다. 불행 중 다행이라던가. 그 병원에서 특별히 불만을 느끼지 못했다. 주치의랑 간호사들 친절과 열성이 남달랐는데…. 못마땅한 모습은 엉뚱한 데 있었다. ‘의대 정원 증원 이슈로 인한 불편함을 최소화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본관 정면 유리창에 붙인 안내문이었다. ‘문제’라 하면 될 걸 굳이 ‘이슈(issue)’라 하다니.

반년 넘게 티격태격한 그 일 풀겠노라 대통령실에서 한 소리는 더 거슬렸다. “의대 정원 문제는 의료계가 합리적 안을 제시하면 언제든 제로베이스에서 논의하겠다.” 제로베이스(zero-base)? ‘백지상태(출발점)로 되돌려 결정(검토)하다’라는 뜻이라는데. 쉬운 말 놔두고 왜 어려운 외국어를 쓰는지. 대다수 언론이 ‘원점(原點)’이라 풀어 썼다. 특별한 까닭 없는 한 우리말 쓰기가 당연하니까. 나랏일 한다는 사람들이 좇아야 할 바가 국민을 편안케 함일진대, 일상적인 말부터 불편을 끼친다.

혹시 윗물이 맑지 못한 탓인가. “새로운 국정 기조에 맞추지 않고 애매한 스탠스 취한다면 과감하게 인사 조치하라.” 대통령이 장관들한테 한 말이다. ‘스탠스(stance)’는 ‘태도/자세’라는 뜻. ‘어정쩡한(아리송한) 태도’라 했다면 좀 좋았을꼬. 얼마나 많은 이가 전해 듣고 알쏭달쏭할지 모르는데.

서울 시장은 이런 말을 했다. “(김포시 서울 편입을) 롱텀 베이스로 놓고 이번 기회에 한번 논의해 보자.” ‘롱텀(long-term)’이 ‘장기(長期)’라는 뜻이라나. ‘길게 보고’ 하면 될 터인데…. 입에 밴 걸 어쩌라고? 시민 받들고 국민 위해 산다는 그 마음, 말로 우러나지 않는데 믿을 수 있느냐는 얘기다.

“제가 나중에 보니까 좀 굉장히 나이브했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장 때 지검장을 관용차로 모셔 조사했다고 꾸중 들은 이가 방송에서 그랬다. ‘나이브(naive)’는 ‘순진하다’는 뜻. 나리들 덕분에 온 백성이 영어 공부 많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