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양진경

집에서 차로 20분쯤 떨어진 곳에 24시간 콩나물국밥집이 있다. 끼니를 놓치면 거기까지 종종 간다. 코로나19 이후 24시간 식당이 줄어들고 쉬는 시간도 늘어나서 갈 곳이 많지 않다. 그 식당은 맛도 좋다. 콩나물 무료 리필도 해준다. 그래서인지 늘 사람이 있다. 손님들은 낮엔 밥을 먹고 밤에는 술을 마신다. 콩나물국밥은 감자탕처럼 동물성 국물 요리가 아니므로 분위기도 늘 깔끔하다. 개인적으로 깨끗한 24시간 식당은 도시인의 삶의 질에 기여하는 일종의 공공재라 본다. 늘 감사하는 마음으로 한 그릇 먹고 나온다.

종일 굶은 올여름 어느 밤에도 그 국밥집에 갔다. 몇 달 만에 와 보니 새 직원이 있었다. 이름은 콩순이. 서빙 로봇이다. 그새 키오스크도 설치돼 나는 이제 직원과 대화할 필요가 없어졌다. 키오스크로 주문과 결제까지 하고 조금 있으면 콩순이가 알람을 울리며 굴러온다. 콩순이의 접시에 담긴 국밥을 옮기고 콩순이 머리 부분에 있는 터치스크린 속 ‘돌아가기’ 를 눌러주면 콩순이가 돌아간다.

서빙 로봇을 본 게 처음은 아니다. 올해 기준 통계청에서 집계한 서빙 로봇은 약 1만대 규모라고 한다. 그중 몇 대는 나도 봤다. 한 번은 대기업 본사 지하 식당 솥밥집에서 서빙 로봇이 굴러왔다. 그때는 크게 인상에 남지 않았다. 그 회사는 이미 서빙 로봇을 만들고 있었으니 그런 식으로라도 상품을 보여줘야 할 거라 생각했다. 서민 동네 단골 식당 신입 직원이 콩순이가 된 건 다른 문제였다. 동네 식당까지 테크 제품이 들어온 것이다.

서빙 로봇은 기계와 전자, 소프트웨어가 맞물리는 통합 기술이다. 로봇을 만드는 건 시발점일 뿐, 로봇을 목적지까지 움직이게 하고 사람을 피하는 등의 다양한 변수에 매끈하게 대응하는 게 노하우다. 여기서 중요한 건 매끈한 움직임을 위한 소프트웨어 기술이다. 일례로 서빙 로봇이 움직이려면 천장에 마커를 붙여야 한다. 천장이 높은 식당은 서빙 로봇의 동선에 제약이 생긴다. 로봇이 바퀴로 움직이니 식당 바닥도 평평해야 한다. 이런 변수에 대응하며 가격 경쟁력을 맞춰야 이 게임에서 이긴다.

로봇 전문 회사는 물론 KT나 LG유플러스 등의 통신 대기업과 배달의민족까지 서빙 로봇 시장을 바라본다. 각자의 기존 자산을 활용한 시너지를 꿈꾼다. KT는 전화, 인터넷, CCTV, 키오스크 오더에 서빙 로봇까지 결합시킨 상품을 이미 B2B 소비자에게 출시하고 있다. 배달의민족 역시 서빙 로봇을 꾸준히 개발해왔고, 최근 키오스크를 활용한 테이블 오더 업계에 진출하는 등 서비스 통합을 위한 시도를 계속한다. 내수 소매시장 규모에 한계가 있으니 소상공인 시장으로 사업을 확장한다는 면모도 있다.

기술과 진화는 비례하거나 나란히 발전하지 않는다. 서비스 현장의 로봇과 키오스크는 새로운 이야기가 아니다. 지금 한국 태블릿 주문 플랫폼 점유율 1위를 차지하는 티오더의 매출은 5년 사이 120배 늘었다. 신기술이 수용되려면 온 사회 단위의 소용돌이가 일어나야 한다. 예를 들어 남성용 손목시계는 1차 세계 대전 후에야 사회적으로 받아들여졌다. 1차 세계대전의 특징이었던 참호전에서 손목시계가 장병의 필수 장비가 되었기 때문이다.

서빙 로봇 대중화에도 큰 소용돌이 같은 변수가 있다. 코로나19와 최저임금제 인상이다. 코로나19는 키오스크 등 식당 속의 비대면 기기 조작을 일상화시켰다. 최저임금 인상은 점주들에게 서빙 로봇 같은 대안 노동력을 고려하게 했다. 갑작스러운 변화는 늘 개념적 미아를 만들어낸다. 키오스크와 서빙 로봇의 시대가 오자 기계 조작에 익숙하지 않은 장노년층은 식당 주문에마저 소외되고 있다. 사회적 약자를 위해 설계되었을 최저임금 인상의 부작용이 여기서도 드러난다.

현장에는 늘 답이 있다. 콩순이를 보유한 24시간 국밥집도 문제를 해결했다. 비결은 간단했다. 인간과 기계의 공존. 내가 키오스크를 보며 주문하는 동안 동네 어르신 3인이 들어오셨다. 그 분들은 키오스크나 콩순이는 쳐다보지도 않고 바로 손을 번쩍 들었다. “국밥 세 개랑 소주 한 병 줘요.” 홀에 계시던 사모님께서 주문을 받아 친절하게 대답하시고는 바로 주문을 포스(POS)기에 입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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