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박상훈

“한국 사람은 노벨문학상 못 타.”

2023년 영화 ‘패스트 라이브즈(Past Lives)’에서 주인공은 캐나다로 이민 가는 이유를 이렇게 말했다. 최근 작가 한강이 노벨문학상을 받자 영화 속 이 장면이 소셜미디어에서 화제가 됐다. 이처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우리 문학이 노벨상을 받을 수 있다고 예상한 사람은 많지 않았다.

마찬가지로 방탄소년단이 빌보드 차트 1위를 차지하고, 영화 ‘기생충’이 아카데미상 4관왕에, 드라마 ‘오징어 게임’이 에미상 6관왕에 올랐다는 소식에 세계가 놀랐지만, 솔직히 우리가 더 놀랐다. 늘 우리는 세계의 변방에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언어도 문제가 아니었다. 그렇다면 이제 대한민국이 노벨 과학상을 못 받는 이유도 혹시 우리가 잘못 생각한 부분이 있지는 않은지 따져 볼 차례다.

널리 알려진 오해는 노벨상은 기초과학에 주어진다는 것. 그런데 올해 노벨 물리학상과 화학상은 모두 인공지능(AI) 분야에 돌아갔다. 여기에서 알 수 있듯이 노벨상이 꼭 순수 학문만 높이 평가하는 것은 아니다. 올해만 그런 것도 아니다. 1901년 제1회 노벨 물리학상은 엑스레이를 촬영한 독일의 빌헬름 뢴트겐이 받았고, 1909년 이탈리아의 굴리엘모 마르코니는 무선전신을 만든 공로로 노벨상을 받았다. 트랜지스터를 발명한 미국의 윌리엄 쇼클리도 1956년 노벨상을 받았다.

이후에도 산업에 이바지한 여러 혁신가가 노벨상을 받았다. 요컨대 노벨상은 인류 문명에 큰 영향을 준 과학적 업적에 주어지는 것이지, 기초나 응용을 가리지는 않는다. 이보다 더 주목해야 할 점은 지식 네트워크이다.

과학과 지식의 발달로 계몽주의 시대가 열리자, 서구 지식인들은 자신이 살던 동네에서 벗어나 국경을 넘어 편지를 주고받았다. 이런 ‘서신 네트워크’를 구축해 종교의 권위를 딛고 인간 이성에 의한 새로운 세계관을 만들었다. 이를 ‘편지 공화국(Republic of Letters)’이라 부른다. 편지의 내용은 서로의 안부를 묻는 차원을 떠나 최신 과학 연구 동향이나 새로운 출판물에 대한 소개가 포함됐다. 그리고 교류를 통해 논쟁했다.

이런 지식인들의 상호 연락 체계는 서로의 생각을 가다듬어 훨씬 풍부한 지식으로 이끌었다. 지식인들이 이러한 소통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것은 당연한 의무였다. 편지 공화국은 막 태동하기 시작한 과학혁명이 서구 사회 전체의 보편적인 가치관으로 자리 잡게 만든 밑받침이었다.

새로운 학문과 철학이 편지 공화국을 통해 전 유럽으로 퍼지며 곳곳에 학술 단체인 아카데미가 설립됐다. 1660년 영국에서 과학자들을 중심으로 런던 왕립 학회가 탄생했고, 이후 프랑스에는 1666년 파리 과학 아카데미가 만들어졌다. 1700년에는 베를린 아카데미가, 1724년에는 러시아에 상트페테르부르크 아카데미가, 1786년에는 스웨덴 왕립 아카데미가 설립된다. 스웨덴 왕립 아카데미가 현재 노벨상 수상자를 선정하는 스웨덴 한림원이다. 이처럼 편지 공화국은 지식 공동체를 만들었다. 프랑크푸르트 학파 2세대 이론가인 독일 사회학자 위르겐 하버마스는 편지 공화국으로 형성된 시민사회가 권력 이동과 시민혁명을 일으켰다고 보기도 한다.

편지 공화국으로 만들어진 지식 공동체는 자신들이 주고받은 소중한 이야기를 세상에 알리고자 나섰다. 편지에 담았던 최신 학술 성과들을 모으고, 다시 이를 편집하고 정리해서 정기 간행물로 출판하기 시작했다. 학술지는 이렇게 탄생했다. 1665년 1월 최초의 학술 잡지 ‘주르날 데 사방(Journal des Sçavans)이 프랑스에서 출간되기 시작했다. 두 달 뒤 영국에서는 런던 왕립 학회의 저널 ‘철학회보(Philosophical Transactions)’가 탄생했다. ‘철학회보’는 360여 년이 지난 지금도 간행되고 있어 현존하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학술 저널이다. 이러한 편지 공화국의 전통에 따라 현재에도 상당수 학술지에는 ‘Letters’나 ‘Communications’ 같은 이름이 붙는다.

이처럼 서구의 지식 네트워크는 수백년간 교류를 통해 구축됐다. 어쩌면 우리가 놓치고 있는 것이 이 부분일 것이다. 지난 2019년 한국연구재단은 2008년부터 10년간의 노벨과학상 트렌드를 분석해서 발표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 과학자들의 논문 편수나 피인용 횟수는 이제 상당한 수준에 이르렀지만 공동 연구나 연구 협력 분야에서 많이 뒤처진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최근 노벨과학상은 대부분 공동 수상이라는 점에서 점점 더 과학기술의 다학제 간 융합이 중요해지고 있다. 그래서 이제는 경계를 넘는 교류가 혁신적인 연구의 중요한 요소임을 보여준다. 따라서 아무리 연구 성과가 뛰어나더라도 글로벌 지식 네트워크에 속해 있지 않으면 영향력을 발휘하기 힘들다.

우리 영화인들은 오래전부터 세계 곳곳을 돌아다니며 한국 영화를 알렸고, K팝 가수들은 세계 주요 도시에서 콘서트를 가졌다. 그러면서 우리 언어와 문화는 자연스레 서구 문화 네트워크와 연결되었다. 반면, 국제 학술대회에 참석해서 오히려 한국인들끼리 몰려다니고, 외국 출장에서 한국인을 더 열심히 만난다. 세계 최대 IT·가전 전시회인 라스베이거스의 CES에도 많은 혁신적인 한국인이 찾아가지만, 우리끼리 모이는 장면이 더 많이 보이는 것이 현실이다.

편지 공화국을 이은 학술지 편집자들을 만날 기회이고, 세계의 지식인들과 교류할 절호의 기회이지만 현재 우리의 모습은 아쉽다. 우리 문화가 세계 어디를 가더라도 환호를 받는 데 비해 우리 과학은 국제적 인지도가 낮다면 그 원인이 무엇인지 생각해 봐야 한다. 대한민국은 이미 세계 10위권의 경제 대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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