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상을 받은 소설가 한강의 뿌리는 전라도 장흥이다. 부친인 소설가 한승원 선생의 고향이 이곳이다. 나는 한강은 만나본 적 없고 소설도 읽어본 적이 없지만, 그 아버지는 몇 번 만난 적 있다. 자식 농사 잘 지어서 말년 팔자가 보람찬 분 아닌가!

장흥에 있는 한승원 선생의 집필실인 해산토굴(海山土窟)에 10여 년 전 몇 번 놀러갔던 적이 있다. 호수 같은 바다인 득량만이 내려다보이는 언덕에 토굴이 자리 잡고 있었다. 언덕길에 서서 그 바다를 보며 ‘푸른 득량만이 문필가를 위로해 주는가?’ 하는 생각을 했다. 서울에서 살다가 시골에 내려와 산다는 것 자체가 내공이다. 내공 없으면 인텔리겐차가 산골에 오래 못 산다.

“궁벽진 바닷가에서 고독을 어떻게 견디십니까?” “득량만에서 나오는 생선 횟감과 생굴을 놓고 와인 한잔 하면 에너지도 얻고 사는 맛이 납니다” “장흥에서 소설가가 많이 나왔다면서요?” “장흥에 와서 ‘소설 자랑 하지 말라’는 말도 있지요.”

근래에 이청준, 송기숙, 이승우가 모두 장흥 출신이다. 그런가 하면 시·소설·수필을 써서 문단에 등단한 사람만 대략 200명이라고 한다. 장흥군은 겨우 인구 3만5000명 정도다. 이런 상황을 보면 생각나는 단어가 ‘인걸은 지령(地靈)’이라는 말이다. 장흥에 답사올 때마다 장흥의 산세가 간단치 않다고 느꼈다. 천관산(天冠山), 억불산(億佛山), 제암산(帝巖山), 사자산(獅子山)이라는 이름 자체가 비범하다.

장흥에서 손꼽는 명촌이 첫째 기산, 둘째 행원, 셋째 방촌이다. 멀리서 보면 흡사 사자가 엎드려 있는 것처럼 보이는 사자산. 사자 갈기가 확실하게 보인다. 엎드린 사자의 젖을 빨고 있는 형국에 자리 잡은 기산(岐山) 마을. 마을 입구에는 조선 시대 8문장가를 배출한 ‘팔문장마을’이라는 돌비석이 세워져 있다. 조선 중기 삼당 시인으로 유명했던 옥봉 백광훈이 이 동네 출신이다. 백광훈의 형이 기봉 백광홍(1522~1556)이다. 이 동네 사람들은 백광홍을 더 자랑한다. 그 이유는 백광홍이 관서별곡(關西別曲)의 저자이기 때문이다. 1555년에 평안도평사로 부임하는 길에 그 풍경을 보고 지은 작품이 관서별곡이다. 정철의 관동별곡(1580년)보다 25년이나 빠르다.

이 동네 사람들은 ‘관동별곡’ 이전에 기봉의 ‘관서별곡’이 있었음을 자랑스러워한다. 동네 앞에 보이는 산이 억불산인데, 그 중간에 손가락처럼 보이는 바위로 된 문필봉이 이 동네를 향해 기를 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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